오직 ‘이것’만 있습니다.
오직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만 있습니다.
개인에게는
이 말이 몹시 낙담하게 하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듣는다면
이 말은 폭발적으로 자유롭게 합니다.
• • •
해탈 속에서, 삶은 계속됩니다.
단지 당신이 더는 거기에 있지 않을 뿐입니다.
삶이 스스로 살아갑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 • •
그것은 의자에 앉아 있는 개인으로부터
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
그저 일어나고 있음으로의 전환입니다.
거리를 걸어 내려가는 개인으로부터
거리를 걸어 내려가는 일이
그저 일어나고 있음으로의 전환입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으로부터 삶이
그저 일어나고 있음으로의 전환입니다.
이 전환은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사실, 그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 • •
이 글을 읽고 있는 존재가
바로 이 글을 쓴 존재입니다.
이 문장 속에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삶이 당신을
깜짝 놀라게 하도록 놓아두는 것은.
과거가 깨끗이 지워진 채,
갓 태어난 아이처럼
매일 아침 깨어나는 것은.
모든 일은
정확히 일어나야 하는 대로
일어날 것임을 아는 것은.
아침에 침대 밖으로 나와서
이를 닦고 옷을 입고
신선한 공기 속으로 걸어 나가는 것보다
더 고귀하거나 영적이거나 숭고한 일은
없음을 아는 것은.
이해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이해하는 것은.
매일, 매 시간, 매 순간을 살면서
그때가 언제나 당신의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
마지막 순간임을 아는 것은.
그리고
그 마지막 날이
또한 최초의 날이며
마지막 순간이
최초의 순간임을 아는 것은.
모든 작은 것들 하나하나 안에서
현존을 보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아무 이름 없이 당신에게 되비치는
사랑만을 보는 것은.
• • •
사람들은 가끔 묻습니다.
“제프, 그게 당신한테는 어떤가요?
깨어 있는 것은 어떤가요?
‘하나임’의 자리에 있는 것은 어떤가요?”
나는 이런 질문들에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어떤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질문들은
모두가 어떤 개인을 향한 질문인데,
여기에는
그런 개인이 없습니다.
깨달음?
깨어남?
하나임?
그것은 모두 개인을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 아무도 없다면,
여기에는 깨달을 사람도 없고,
깨어날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하나임’이라는 것에 대해
뭔가를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경이로운 부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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