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해져야 한다.
명상하고 수행한다는 것은
‘희미’해지는 연습이다.
뚜렷해지면 단절되고 고립된다. 희미해지면 연결되고 하나가 된다. 대낮의 밝은 태양 아래서는 모든 것이 뚜렷이 구분되고 단절된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사물과 사물이 서로 대립되고,
존재와 존재가 서로 부닥친다.
그러나 해가 지고 저녁이 찾아오면 모든 사물은 어둠 속에서 희미해지며 하나로 연결된다. 어둠 속에서 사물과 사물 사이의 경계가 녹아내리고, 서로가 서로 속으로 침투하며,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인다.
그 안에는 나도 없고 너도 없다.
모든 개별자들은 저 심오한 어둠 속에서
잠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玄之又玄 衆妙之門
현지우현 중묘지문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
우주의 근원적 신비가 있도다
저 ‘현지우현’이 바로 여기에서 말하는
‘희미’를 가리키는 것이다.
‘희미’해져야 ‘현지우현’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감각과 지각을 담당하는 내 몸의 모든 스위치를끄고 현지우현의 저 심오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이름(名)’이 사라진다.
그 안에는 나라는 사물도,
너라는 사물도 없다.
이른바 ‘무물’의 상태이다.
復歸於無物 복귀어무물
무물의 상태로 복귀 하도다
노자는
‘무아’라고 말하지 않고,
‘무물’이라고 말한다.
노자는
‘무아의 경지’라고 말하면 남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말하지 않고 굳이 ‘무물의 경지’라고 말한다.
이것을 우리 현대인들은 얼른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노자의 이러한 표현법은 노자가 세상을 얼마나 총체적으로 파악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노자·장자 철학의 핵심은
모든 만물이 근원적으로 하나라는 것이다.
도 안에는
어떤 구분이나 구별이 없다.
도에는 색깔도, 소리도, 형체도 없다.
요컨대, 도에는 어떤 이름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름이 녹아내린 세계이다.
그것은
물아일체物我一体이며
혼연일체渾然一体이고,
물物의 소멸이며 아我의 소멸이다.
그것은
한없이 어두운 현지우현玄之又玄이며,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이고,
우주의 궁극적 신비이다.
이 상황을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를 일러
형상 없는 형상(無狀之狀)이라 하고,
무물의 상(無物之象)이라 하며,
또한 황홀恍惚 이라 하느니라.
- 노자, 최상의 덕은 물과 같다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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