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저절로 얻어진다
무념이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어차피 사람의 생각은 계속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것이다. 생각이 어지러운 사람은 외부 형상을 보고 헛된 생각을 한다.
마음이 어떤 사물을 인지하고 느껴도 마음이 그곳에 머무르지 않으면 무념에 도달하게 된다.
진정한 고수는 남 앞에서 자기 능력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남 앞에서 자기 능력을 과시하는 사람은 진정한 고수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도 능력을 드러내지 않으면 누가 진정한 고수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흔적을 남기지 말 것을 강조하는 선종도 후계자를 선택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시험을 치렀다.
홍인선사가 후계자를 선택할 때가 되자 제자들에게 게송을 한 수씩 짓게 했다. 게송을 보고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이를 골라내 자신의 가사와 장삼을 물려주며 후계자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신수가 그 소식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깨달은 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홍인선사가 자신이 깨달은 것의 깊이를 알 수 없고, 깨달은 것을 표현하자니 후계자 자리를 놓고 속세 사람들과 다투는 것처럼 보일 듯싶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 모두 자는 밤중에 몰래 나가서 복도 벽에 게송을 써 놓고 자기 이름을 써 놓지 않은 것이다.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라
부지런히 털어 내어 먼지가 일지 않게 하리라
홍인선사가 그걸 보고는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라며 철저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이 이 게송을 따라 수행하면 타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사람들에게 그 게송이 쓰인 벽 앞을 지나갈 때마다 예를 올리고 한 번씩 읽게 했다.
얼마 후 누군가 신수의 게송을 읊고 있는데 혜능이 그걸 듣고 깨달음이 얕다고 여겼다. 그가 그 자리에서 게송 두 수를 짓더니 글을 아는 이에게 그걸 벽에 써 달라고 했다.
보리는 본디 나무가 아니요, 명경 또한 대가
아니라네
본디 아무것도 없는데 어디서 먼지가
일어나리오
마음은 보리수요, 몸은 명경대라
명경은 본디 깨끗하니 어디에 먼지가
있으리오
사람들이 혜능의 게송을 보고 괴이하게 여겼지만 혜능은 아무렇지 않게 방앗간으로 돌아가 계속 방아를 찧었다.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신수의 게송을 과소평가하고 혜능의 게송에 찬사를 보냈지만 사실 신수와 혜능의 게송은
각각 선종의 북종과 남종의 뿌리였다.
두 사람의 게송은 우열을 가려야 할 것이 아니라 깨닫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일본 조동종의 승려 누카리야 가이텐은
“혜능의 방식은 돈오에 치중해 오만한 마음을 갖기 쉽고, 신수의 방식은 점진적 수행을 중요하게 여겨 좁은 소견에 빠지기 쉽다.”
라고 평가했다. 혜능의 게송이 궁극적 깨달음을 논하기는 했지만 신수가 내세운 수행이 없다면 공중누각에 불과하다. 교육적 관점에서 보면 혜능의 방식은 천재들에게 어울리고, 신수의 방식은 평범한 학생들에게 적합하다.
두 사람의 성격을 살펴보아도 혜능은 확실히 천재 기질이 있었고, 신수는 그에 비하면 매우 신중한 성격이었다. 신수는 게송을 지으면서도 이런저런 근심이 많았지만 혜능은 거리낌 없이 자기가 깨달은 대로 지은 뒤에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신수와 혜능 모두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었지만,
신수의 깨달음은 수련해서 얻은 것이고 혜능의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얻어진 것이었다.
평범한 우리들은 닿을 수 없는 혜능의 경지에 감탄하며 그 오묘한 뜻을 음미하려고 계속 읊조리지만,
신수의 게송은 너무 단순하게 보여 깊이 파고들어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그 단순한 것이 가장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어느 선승이 소식(소동파)에게 했던 말처럼, 이치는 단순한 것이지만 그걸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법이다.
평범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단순함이다.
이치는 단순한 것이지만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불안하지 않게 사는 법 중에서
신수 게송
몸이 보리 지혜의 나무요
身是菩提樹
마음은 밝은 경대와 같나니
心如明鏡臺
시시각각 부지런히 닦아
時時勤拂拭
티끌이 묻지 말게 할지니라.
勿使惹塵埃
혜능게송
보리는 본래 있는 나무가 아니며
菩提本無樹
밝은 거울 또한 있는 경대가 아니니라.
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것이거니
本來無一物
어느 곳에 티끌이 묻으리오.
何處惹塵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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