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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어나는 생각

 

 

우리는 보통 ‘지금’을 

과거와 미래의 두 광대한 공간 사이에 낀 

 

시간 속의 한 순간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우리의 실제 경험에서 

탐구해 봅시다.

 

 

서서히 뒤로,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 봅니다, 

오늘 아침의 식사, 

지난밤의 저녁 식사, 

지난주, 

작년 등 

당신이 사는 동안 일어난 일들을, 

 

그 일과 연관된 이미지를 

차례로 생각하고, 

도중에 하나하나의 일 사이에서 

잠시 멈추면서, 

당신이 태어난 그때까지 돌아갑니다.

 

 

자신이 태어난 

 

순간을 지나 

 

 

과거의 광대한 공간으로 

계속 거슬러 가 봅시다. 

 

19세기 세잔의 출생, 

18세기의 베토벤, 

17세기의 바흐, 

13세기의 루미, 

더 이전의 샹카라차리야, 

예수, 

부처, 

파르메니데스로……. 

상상 속에서 초기의 인류로, 

인류 이전의 지구로, 

지구 이전의 우주로 

 

계속 돌아가 봅니다.

 

이런 사건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각각의 사건이 그전의 사건에 비해 

‘지금’으로부터 

좀 더 멀리 떨어진 때에 일어났다고 

상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역사 이전의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이 

먼 시점에 일어난 것으로, 

 

오늘 아침 식사는 훨씬 가까운 것으로, 

지금 막 일어났던 생각은 

더 가까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일들을 생각하는 생각 말고, 

이런 일들을 실제로 경험합니까? 

 

 

생각이 가리키는 

그 사건이 

실제로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단지 

그 일에 관한 

 

 

생각이나 이미지뿐입니다. 

 

 

그 일 자체는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일에 관한 

생각이나 이미지는 항상 

‘지금’ 일어납니다. 

 

 

심지어 

 

생각이 가리키는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그것은 

하나의 사건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경험은 

사건들의 집합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각, 

감각, 

지각의 흐름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두 사건 사이의 기간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다양한 거리, 

즉 생각이 상상하는 기간은 

결코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간은 

 

 

 

실제로 경험되지 않습니다. 

 

 

 

이런 각각의 사건은 단지 

‘지금’의 생각이나 이미지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른바 

과거나 미래에 관해 갖는 

생각이나 이미지는 

 

그저 

지금 일어나는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니 

 

과거를 

생각과 이미지로 가득한 

광대한 폴더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모두를 선택한 뒤 끌어와서 

‘지금’이라고 불리는 폴더에 넣으십시오.

 

그러면 

 

 

 

‘과거’라고 불리는 

폴더가 텅 빕니다.

 

 

 

미래에 대해서도 똑같이 해 보십시오. 

당신의 활동을 미래로 투사해 보십시오.

 

 

오늘 저녁에 할 식사, 

내일 시내에 나가는 일, 

다음에 맞이할 성탄절, 

당신의 80세 생일, 

당신의 죽음, 

인류의 종말, 

지구의 사라짐, 

태양의 소멸. 

이 모든 생각과 이미지는 

 

단지 지금 일어나는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십시오. 

 

 

다시, 

 

이 모든 것을 선택한 뒤 끌어와서 

‘지금’이라는 폴더에 넣고, 

‘미래’라고 불리는 폴더는 

텅 빈 채로 남겨 둡니다.

 

이제, 과거와 미래의 광대하고 

 

텅 빈 

 

두 개의 공간으로 다시 가 보십시오. 

 

 

거기에 있던 사건들이 

하나도 없을 때, 

 

 

그것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들을 찾을 수 있습니까? 

지금 일어나는 생각과 별개로, 

남아 있는 사건의 잔재는 무엇입니까? 

 

과거나 미래라는 

이 두 광대한 공간이 

스스로 실제 존재한 적이 있습니까?

 

 

이 두 공간 가운데 하나로 

들어가려 해 보십시오. 

 

그것들에 관해 생각하지 말고

(우리는 이 공간들에 관해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거기로 가려고 해 보십시오.

 

 

‘지금’에서 나와 

2초만 과거나 미래로 들어가 보십시오. 

거기로 갈 수 있습니까? 

‘지금’을 떠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껴 보십시오.

 

 

지금까지 

과거나 미래를 경험했거나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음을 보십시오. 

 

 

과거와 미래는 

생각으로만 존재합니다. 

 

과거와 미래는 

스스로 실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 • •

 

 

‘지금’의 양쪽에 

이 두 광대한 텅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을 

느껴 보십시오. 

 

‘지금’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 뒤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의 양쪽에는 

  단지 광대한 텅 빈 공간만이 있습니다.

 

 

 

산의 능선에 나 있는 

아주 좁은 길을 따라 걷고 있고, 

양쪽에는 낭떠러지와 깊은 심연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런 식으로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습니까?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 한,

과거의 뒷받침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 없이

그렇게 살아갈 용기를?

 

과거나 미래가 전혀 없는

우리의 경험과 일치되는 방식으로

살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관계한다면, 

 

어떠할까요? 

 

 

광대한 텅 빔 속에 

깃털처럼 가볍게 떠 있으면서 

지금 이 순간만을 산다면, 

어떠할까요?

 

 

과거와 미래가 제공하는 

감정적인 버팀목과 지지대를 

내려놓을 용기를 낸다면, 

어떠할까요? 

 

 

이런 버팀목과 지지대들이 

단지 그것들을 생각하는 생각만큼만 

단단하다는 것을 볼 용기를 낸다면, 

어떠할까요?

 

 

‘지금’의 양쪽에 

이런 두 광대한 텅 빈 공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사실은 맞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금’을 

시간 속의 한 순간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으로 하는 말입니다. 

 

‘지금’의 앞과 뒤에 있는 

‘과거’와 ‘미래’라 불리는 

(두 개의 가득 찬 공간은커녕) 

 

 

두 개의 텅 빈 공간조차 

없음을 보십시오. 

‘지금’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 • •

 

 

 

‘지금’은 

시간 속의 한 순간이 아님을 보십시오. 

‘지금’에는 

그 안의 한 순간이 될 시간이 

아예 없습니다. 

 

‘지금’은 영원합니다. 

 

영원하다는 것은 

늘 현존한다는 뜻이지, 

영속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은 

모든 경험이 담기는 그릇이지만, 

이 그릇에는 

시간 안에서의 어떤 확장도 없습니다. 

 

 

그것은 

늘 현존하는 앎입니다.

 

 

먼저, ‘지금’이 

 

모든 것을 담는 

경계 없는 공간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은 

과거에서 오지 않으며, 

미래로 떠나지도 않습니다.

 

이 경계 없는 공간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한계 없는 공간은 

시간 속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시간은 

그 안에 나타나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이제 

‘지금’에서 

공간 같은 성질을 제거해 보십시오, 

 

왜냐하면 

‘지금’은 

명백히 물리적 공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시간이라는 일차원의 선에 있는 

한 순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십시오. 

 

그것은 한 시점도 아닙니다. 

 

그것은 

 

순수한, 

차원 없는, 

아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 차원 없는 현존 안에 

(우리가 이 현존에 안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시간이라는 1차원과 

공간이라는 3차원이 나타납니다.

 

저는 철학이나 형이상학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의 단순하고 평범하며 

매일 하는 경험에 관해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 • •

 

모든 경험은 

‘지금(Now)’ 일어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늘 ‘여기(Here)’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경험하든, 

 

 

언제나 ‘여기’입니다.

 

 

‘여기’를 떠나려고 시도해 보십시오, 

‘지금’을 떠나려고 시도했던 

똑같은 방식으로 

‘저기’로 가 보십시오.

 

 

우리가 

몸, 마음, 세계에 관해 

아는 모든 것은 경험이며, 

 

우리가 

경험에 관해 아는 모든 것은 

‘여기’에서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결코 

‘저기’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과거나 미래를 경험하지 못하므로 

시간을 경험하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저기’도 경험하지 못하는데, 

 

이는 우리가 실제로는 

 

 

공간이나 거리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지금’이 

시간 속의 한 순간이 아니듯이, 

 

‘여기’는 

공간 속의 한 지점이 아닙니다.

 

‘여기’는 

모든 경험이 일어나는 

차원 없는 지점이며, 

‘지금’과 같습니다. 

 

이 두 지점은 

‘지금’ 또는 ‘여기’로 불리는 

똑같은 차원 없는 지점입니다. 

 

 

영원한 ‘지금’과 

무한한 ‘여기’.

 

 

영원한 ‘지금’ 

즉 늘 현존하는 ‘지금’, 

 

 

그리고 

무한한 ‘여기’ 

즉 유한한 성질이 없는 ‘여기’는 

우리가 

알고 보고 감촉하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을 수 없습니다.

 

이 영원하고 무한한, 

차원 없는 지점이 

바로 우리 자신의 ‘존재’

(영원하고 무한하고 차원 없는 앎의 현존)이며, 

우리 ‘존재’의 중심입니다.

 

 • • •

 

생각은 

이 중심을 찾을 수 없습니다. 

 

생각은 

영원성의 자리에 

‘시간’이라 불리는 것을 만들어 냅니다. 

 

생각은 

무한성의 자리에는 

‘공간’이라 불리는 것을 만들어 냅니다.

 

시간과 공간

(우리 경험의 기반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앎의 

영원하고 무한한 성질이 

마음을 통해 보일 때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경험의 한가운데에 

머물 용기를 내십시오.

 

그렇게 하더라도 

우리가 어떤 상황에 

적절히 반응할 필요가 있을 때 

시간과 공간의 측면에서 관계하는 

능력을 잃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때는 

모든 경험의 한가운데에서, 

우리 ‘존재’의 중심에서 빛나는, 

늘 현존하며 

차원 없는 실재로 돌아갑니다.

 

수십 년 전부터 우리의 문화는 

이 차원 없는 지점으로부터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하는, 

빅뱅에 의해 우주가 전개되고 있다는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차원 없는 지점이 

우리 ‘존재’의 핵심, 

‘앎’의 중심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온 우주가 그것으로부터 전개되고 

그 안에서 확장될 수 있을까요? 

 

다차원의 우주 또는 우주가 

차원 없는 앎 안에 나타나고, 

그 앎에 의해 알려지고, 

그 앎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결국, 그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별로 낯설지 않습니다.

 

우주의 확장이 일어나는 곳은 

먼 과거나 공간의 한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주의 소멸이 일어나는 곳도 

먼 미래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똑같이 시간이 없고, 

장소가 없고, 

차원이 없는 

 

우리 ‘존재’의 중심 안에 있습니다.

 

몸의 태어남과 죽음은 

영원한 ‘지금’과 무한한 ‘여기’인 

똑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실제로는 

어디로도 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운명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태어남과 죽음을 분리하는 

시간의 간격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생각 말고는.

 

 

이 ‘지금’은 

늘 있는 유일한 ‘지금’, 

영원한 ‘지금’입니다. 

 

그것은 

과거에서 오지 않았고 

미래로 가고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시간의 선을 따라 나아가는 

현재의 순간을 경험합니까? 

 

그렇다면 

그 현재의 순간은 

얼마나 빨리 나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실제로 

느껴 보십시오. 

 

우리는 

‘영원히’ 시간 없는 똑같은 ‘지금’에, 

차원 없는 똑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는 

생각과 이미지로서 

우리를 통해 흐릅니다. 

 

우리가 그것들 안에서 흐르거나 

그것들을 통해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몸, 마음, 세계는 

우리 안에서 태어나고 죽습니다. 

우리가 그것들 안에서 

태어나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금/여기’는 

영원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없는, 

차원 없는 자리를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순수한 앎의 빛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