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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이 허공과 같을 수 있다면,

마음을

허공과 같게 하라

 

  

 

   

우리는 구체적 환경 속에서 구체적인 일과 마주치며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사무실에 있을 수도 있고, 길 위에 있을 수도 있으며, 타인과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고, 교통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다. 이처럼 날마다 크고 작은 고민과 희로애락이 우리를 찾아온다. 일상의 잡다한 일들 속에서 하루하루 조금씩 기운을 소모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얻으면 기뻐하고, 잃으면 고통스러워한다. ‘마음이 한없이 넓다’는 혜능의 말은 우리가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의미다. 세상은 한없이 광활한데 우리는 그것을 잊은 채 작은 득실에 연연하고 있다.

 

복작대는 생활에서 벗어나 세상을 둘러보면 그곳에 드넓은 하늘과 대지가 펼쳐져 있다. 시야를 넓히고 한없이 넓은 세상을 바라보면 일상의 잡다한 일이 더 이상 우리 영혼을 갉아먹지 못한다. 시야를 넓히고 시선을 멀리 두고 먼 곳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속세를 바라보면 모든 것이 아주 작고 희미해진다.

 

거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자신을 무한한 세상과 융화시키면, 몸도 원래 몸이고 일상도 원래 일상이지만 마음은 지금 이곳을 초월해 허공과 같은 태도로 일상을 관조할 수 있다.

 

허공과 같은 태도란 무엇일까? 

혜능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가 모두 다 허공이다. 

허공은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다. 

해와 달과 별, 산과 물, 풀과 나무, 악인과 선인, 악법과 선법, 천당과 지옥이 모두 다 허공 속에 있다. 

사람들 성품이 텅 빈 것도 이와 같다. 

사람 본성 속에 모든 법이 포함되어 있기에 

크다고 하는 것이다. 

모든 법은 사람 성품 속에 있다. 

남의 선악을 보고 모두 버리지 않으면서도 

물들지 않으면 마음이 허공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큰 것이며 이를 ‘마하’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자기 몸 바깥 것에 초연한 마음가짐이다. 일반 차원에서 보면 선종도 선악을 구분하고 선을 행함으로써 덕을 쌓으라고 강조한다. 일반 대중에게는 ‘모든 악을 행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면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불교의 어느 종파를 막론하고 선악을 포함한 모든 이원론적 구분을 초월한다. 이 점을 오해하고 혜능의 주장이 모순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열 가지 선한 것은 천당이다.”라며 선한 일만 생각하고 행하고 악한 일은 생각하지도 말라고 해 놓고, 또 한편으로는 “모든 선악을 생각하지 말라.”라며 선악을 구분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혜능의 이 말 두 가지를 두 차원으로 나눠서 이해한다면 모순되지 않는다. 일상 차원에서는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선악 규칙에 따라 선악을 구분하지만, 



일상을 초월한 차원으로 올라가면 

선과 악이 모두 실재하지 않는 ‘공’임을 관조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볼 때 선과 악에는 경계가 없으며, 

자연적 본성 속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행하면 그것으로 된다.



우리 마음이 허공과 같을 수 있다면, 우리는 유한한 현재에서 무한한 영원으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우리 마음이 허공과 같을 수 있다면, 우리가 모든 것의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으므로 그들을 

 

가질까 버릴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 마음이 허공과 같을 수 있다면, 개인적 부와 명예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이 아니라 바깥 사람들과 자연을 바라볼 수 있다. 또 모든 사람에게 자비와 사랑을 보여 줄 수 있고 이익을 둘러싼 다툼에서도 너그럽게 양보할 수 있으며 모든 적에게 관용과 인내를 베풀 수 있다.

 

우리는 항상 남들에게 냉대받고 피해받았다고 푸념한다. 그런데 바꾸어 생각해 보자. 차별과 모욕을 당하는 것이 최고의 정신 수련법일 수도 있다. 차별과 모욕을 당하는 동안 강인한 의지를 기를 수 있고 자존심을 지키며 스스로 강해질 수 있다.

 

성공한 뒤에 과거에 자신을 멸시했던 이들에게 일일이 복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원수에게 고마워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시련 속에서 자신을 담금질하고 인내심을 기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원수에게 인내, 관용, 자비를 베풀면 자신도 

 

집착과 속박에서 벗어나 아무 두려움도 없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우리 마음이 허공과 같을 수 있다면, 우리는 자아의 경계를 초월해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 우리와 공존하고 있거나 과거에 존재했던, 또는 미래에 존재할 것들을 관조할 수 있다.

 

형형색색 세계가 우리 자아의 경계 밖에서 논리도 목적도 없이 어지럽게 운행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영욕의 덧없는 부침을 생각한다면 지금 자신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깨닫게 된다.

 

우리의 마음이 정말로 허공과 같을 수 있다면, 무엇을 맞닥뜨리든 흔들림 없이 대할 수 있다. 신회는 이렇게 말했다.



허공은 본래 변하지 않는 것이다. 허공은 밝음이 왔다고 밝아지고, 어둠이 왔다고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다. 어두운 허공이 곧 밝은 허공이고, 밝은 허공이 곧 어두운 허공이다. 비록 밝음과 어둠이 각자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는 하지만 허공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번뇌와 보리(진리) 역시 같은 이치다. 깨달음과 미혹은 다르지만 보리의 본성은 변함이 없다.”

 

   

우리 마음이 허공과 같을 수 있다면, 세상이 아무리 소란해도 고요함을 듣고 평온해질 수 있다.

 

     

 

  시야를 넓히고 한없이 넓은 세상을 바라보면

 

  일상의 잡다한 일들은 무의미해진다.

 

  시야를 넓히고 먼 곳에서 속세를 바라보면

 

  모든 것이 아주 작고 희미해진다.

 

   

 

        불안하지 않게 사는 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