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삶을 순리에 맡기라

竹隱죽은 2025. 5. 16. 00:30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발견하게 되면 
문제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문제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이는 
그 당사자도 사라집니다. 
 
 
이것은 
진리탐구에서 매우 중요한 요점입니다.
 
자신을 개인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다면 이런 식의 바라봄은 그저 여러분을 짜증 나게 만들 것입니다. 이렇게 항의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지요.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죠? 지금 제 문제를 아예 다루려 하지도 않고 있잖아요!” 
 
네, 저는 여러분의 문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 문제는 물론이고 여러분 자신조차 실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개인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순수한 인식이며 
순수한 의식입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도 말이지요.
 
좋은 소식은,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기 위해서 ‘개인’이 경험하는 모든 외견상의 문제나 장애를 제거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하나의 장애물을 제거한다고 해도, 또 다른 장애물이 금세 나타날 테니까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내 존재를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가 경험하는 삶이 안정되어야만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오해에 여전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성에 대한 확신에서 벗어날 때라야 ― 이 일은 한순간에 일어날 수 있지요 ― 비로소 우리는 더 높은 곳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의식의 자리에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그저 개인일 뿐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우리가 사실로 오해할 때만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요.
 
의식이 일단 개인-정체성과 사랑에 빠지고 나면, 그 정체성을 더 이상 못 참게 되었을 때만 그것을 포기할 것입니다. 
 
의식이 개인성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개인적 삶과 관련된 일들을 다루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쓰여서 다른 데에 쓸 에너지는 거의 남지 않게 되지요. 
 
한동안 이 개인화된 의식은 다른 뭔가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나와 나의 삶, 내 가족과 친구가 전부인걸.” 이렇게 말이에요.
 
하지만 
개인화된 의식의 테두리는 
제한적이고 매우 갑갑합니다. 
 
그러므로 
언젠가 우리는 
지켜봄과 현존의 더 넓은 영역으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역동적인 삶 속의 문제들을 무시해야 한다거나 그런 문제들을 풀려는 노력이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아요. 실제로도, 문제처럼 보이는 것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한, 그 문제들이 힘을 어디에서 얻고 있는지 살펴보고, 또 우리 자신의 참된 자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그 문제들을 탐구해 볼 수 있지요. 
 
우리의 참된 자리가 
명확해짐에 따라 
문제들은 자연스레 사라질 것입니다.
 
우선 
우리의 문제들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상상하는 식으로는 말이에요. 우리의 문제가 실재한다면 그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문제로 보여야 맞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그것을 상상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만 실재하는 듯이 보입니다. 우리에게 문젯거리나 걱정거리로 보이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거꾸로 다른 사람들의 문제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지 않아요. 
 
의식의 관점에서 
우리의 문제를 보기 시작하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있게 됩니다. 
 
전에는 그리도 어렵게 느껴졌던 것이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지요.
 
앎이 깊어지는 동안에도 우리는 여전히 삶의 곳곳에서 시련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깨달았다고 해서 우리의 역동적인 삶이 완벽해지지는 않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아요. 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의 역동적인 삶은 계속 성숙을 거듭해 나갑니다. 
 
그러나 
이제 그 밑바탕에는 
불변의 의식이라는, 
애쓰지 않아도 이미 완벽한 것이 
자리 잡고 있지요. 
 
우리는 계속 삶과 마주하면서 분별력을 키우고 이해한 바를 검증해갈 거예요. 그것은 삶의 일부이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언가가 계속해서 깊어집니다. 표면적으로는 과거의 조건화가 약간 남아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압도하거나 숨 막히게 하지 못합니다. 이제 그쪽으로는 에너지가 거의 흐르지 않게 되지요.
 
스리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
Sri Nisargadatta Maharaj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인간적 본성이 운명에 따라 펼쳐지도록 둔다. ― 나는 언제나 나로 있을 뿐이다.” 
 
이것은 삶에 대한 매우 아름다운 태도입니다. 절로 펼쳐지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삶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지나치게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드라마와 카르마(業)가 전개되도록 내버려 둘 수 있고, 그러면서도 지켜보는 원리 그 자체로서 머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안의 무언가가 그때그때 자연스럽게, 적절히 반응할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 자신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미리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보다는 매 순간 우리는 삶을 발견해 간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요. 어제 여러분은 오늘이 이러저러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만, 
 
정말 그 예상 그대로 하루가 흘렀나요? 우리 삶 속에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절묘한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삶의 모든 기적들, 예를 들어 버스 옆자리에 앉는 사람들, 길을 가다가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 등을 떠올려보세요.
 
여기서 
삶을 순리에 맡기라는 말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기차에 탔는데 누가 내 호주머니를 털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가정해 보지요. 여러분은 이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겠어요? 
 
아니지요! 
오는 대로 받아들이고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이런 뜻이 아니에요. 누가 내 호주머니를 털고 있어서 화가 난다면, 화가 나게 그대로 두세요. 그 소매치기의 발을 콱 밟고 싶다면, 그 행위 또한 삶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미리 알 필요가 없습니다. 
 
일들은 단지 저절로 생겨나 
펼쳐지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둘러앉아서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막상 때가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때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려는 반응과 호흡을 맞추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아직 만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할지 미리 준비해 두는 것과 같습니다. 
 
때가 되어 그 사람들 앞에 서게 되면, 거기에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분위기가 있어서 우리가 신중하게 준비한 말들은 그 살아 있는 힘 앞에서 죽어버립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야기 또는 정체성에 휘말려 있을 때 으레 나타나는 일이에요. 
 
우리는 과거나 미래에 살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과 서로 따로 노는 것이지요.
 
삶은 
 
우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본이 쓰이고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입니다.
 
삶은 
이런 식의 계획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물론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약간의 계획은 필요하지만, 그런 ‘실용적 마음’에서는 ‘심리적 마음’의 악취가 나지 않아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것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강박적인 생각들이지요. 
 
‘나는 어때야 하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올바른 결정을 내린 건가?’ 
이런 생각에 빠지지 않는 사람은 적절한 식으로 ‘자기중심적(self-centered)’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쓰이는 의미로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고 말이지요. 
 
이런 사람은 
자기 가슴에 중심을 잡고 있어서 
삶은 매 순간 
더 새롭고 자연스러우며 직관적이게 됩니다. 
 
삶은 원래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멋대로 굴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이지 
거친 야생의 존재가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면 
삶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조언을 따른다면 
무슨 일이 생기든 
그것은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거듭 확인할 것이며 
현상을 현상으로서 인지하게 될 것입니다. 
 
지켜봄을 통해 
우리는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깊이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런 태도를 갖게 될 겁니다. 
 
 
“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두고, 
   나는 그저 나로서 있으리라. ” 
 
 
그렇게 되면 현상에 대한 계산과 해석, 평가와 판단으로부터 주의가 거둬지고 우리는 자기 자신 속에서 다시 머무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때로 ‘이 모든 것을 목격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물을 것이고 그럴 때마다 마음은 선뜻 다시 가슴속으로 잠기게 될 것입니다.
 
삶은 
우리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본이 쓰이고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해진 대본을 고수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은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삶에 절대 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단지 삶을 순리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는 자신이 어떤 경우에도 직접 삶을 설계하려 하거나 ― “내 삶은 이래야 해!” ― 자신이 원하는 바에 집착하지 않으리란 것을 압니다. 
 
 
대신에 그는 
삶이 그저 펼쳐지게 둡니다.
 
 
그러니 
거리낌 없이 살아가되, 
마음을 가슴속에 계속 뿌리내리고 계세요.

 
- 드높은 하늘처럼,
 무한한 공간처럼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