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과 믿음이 없으면
무엇이 되려는 노력을 그만둔다는 것은,
마음이
결코 알 수 없는 것에 직면했을 때에
당신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되려 하고,
어디에 도달하려 하고,
무엇을 얻으려고 애쓰는 한,
당신은 실제로
진리 그 자체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되려는 노력을
그만두기 위해서는
‘길’과 ‘여정’을 거부해야만 합니다.
시간을 거부해야만 합니다.
시간은 미래를 의미하며,
내일은 결코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은
결코 내일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일이란
(무엇이) ‘됨’(becoming)이고,
(무엇이) 됨은 시간이며,
시간은 생각입니다.
생각은 쓰레기통입니다.
쓰레기통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오로지 쓰레기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알 수 없는 것’ 안에서 쉰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를
당신의 마음이
전혀 알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마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를 알려 주기를
당신이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되려는 노력을
완전히 그만둘 때,
당신은 멈추게 됩니다.
이 멈춤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혜에서 나옵니다.
질문
그만두는 것도
일종의 행위인 것 같습니다.
무엇이(또는, 어떻게) 되려는 행위를
그만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요?
대답
무언가를 그만두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바로 보고 지각하는 것,
그 자체가 그만둘 수 있게 합니다.
‘당신’이 자기 힘으로
그만둘 수 있다고 믿는 한,
그만두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오직 그만두려고 애쓰는 ‘당신’이
단지 하나의 생각에 불과하며,
따라서 하나의 환상임을 알아볼 때,
그만두는 일은 저절로 일어납니다.
모름 속에 푹 잠겨 있는 것은
머물러 있기에 훌륭한 장소입니다.
모름 속에 잠겨 있을 때,
당신은 알게 되지만
이전에 알던 방식과는 다릅니다.
당신은
‘존재의 순간순간 경험’으로서
알게 됩니다.
그것이 당신의 앎입니다.
당신은
‘그것’이
진정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압니다.
마음이 이해할 수 없는,
늘 펼쳐지고 있는 그 불가사의,
그것이
바로 당신입니다.
질문
뭔가를 추구하고 싶은 욕구를 느낍니다.
육체적인 수준에서 그것을 느낍니다.
대답
욕구는 신체에 반영됩니다만,
그 욕구가 일어나는 근원은 어디입니까?
몸에서 느껴지는 그 감각은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질문
불안이 있습니다.
대답
그것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그 느낌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질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대답 아!
질문
그냥 있을 뿐입니다.
대답
그 어느 곳도 아님,
그 텅 비어 있음은 몸 이전에,
마음 이전에 있으며,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지금, 멈추세요.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그냥 멈추십시오.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냥 멈추세요.
순수한 ‘나 있음’(I AM)으로 있으십시오.
나는 ‘이것’이나 ‘저것’이 아니라,
단지 ‘나 있음’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I)를 던져 버리십시오.
그러면 오직 ‘있음’(AM)만이 있습니다.
이것이
상태 없는 상태이자
궁극의 원리인
절대 참나입니다.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는
참나라 불리는
이 절대 원리입니다.
질문
추구를 하거나
추구를 그만둘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무엇이 되려는 노력이 끝나게 됩니까?
대답
그렇습니다.
‘나’라고 불리는 꿈이
모든 의미와 중요성을 잃어버릴 때,
당신은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개인적인 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찾는 행위가 완수됩니다.
당신은
찾는 자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두가 의식이 꾸는
하나의 꿈에 불과함을 깨닫습니다.
이것을 직접적인 길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길에서는
찾는 자가 한 걸음도 뗄 수 없습니다.
질문
우리가 찾는 자를 놓아 버리는
그 지점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대답
죽음입니다.
질문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대답
찾는 자가 끝나는 것입니다.
질문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에고가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에고가 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대답
진정으로 살기 위해서는
에고가 죽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도 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성장할 필요가 있을 뿐입니다.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죽지는 않습니다.
아이는 단지 성장할 뿐입니다.
아이는 진화하며,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뒤로합니다.
에고가 더 이상
유용하거나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바로 보고,
에고를 뒤로하십시오.
오직 에고만이
자기의 종말을 드라마틱해 보이게 합니다.
질적인 변형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지닌 질문들은
의식 속에서 회피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작용합니다.
그것들이 가치 있는 질문들입니다.
질문
질문들은 변형될 준비가 된 마음에
의식이 반영된 것입니까?
대답
마음은 결코 변형될 준비가 되지 않습니다.
변형은 그저 일어납니다.
그뿐입니다.
질문
참나는 (우리가) 되는(become) 것이 아니라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생각과 경험이
그저 춤을 추면서,
어떻게 되는 듯한 경험을 줄 뿐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모든 일이 아무 원인 없이
저절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질문
우리가 누구인지를 발견하려면
무엇을 그만두어야 합니까?
대답
당신이, 하나의 분리된 개체로서,
그만두거나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각하는 대상에만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그 배경,
즉 최종적으로 지각하는 자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느 쪽이든 알아차림은
늘 100% 일어나고 있습니다.
등불은 밝게 켜져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보고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인간들의 특징은
대상들에 완전히 매료된다는 점이며,
그것은 우리가 ‘나’라고 해석하는
이 대상과 함께 시작됩니다.
그 ‘나’는
단지 생각일 뿐입니다.
당신은
이 ‘나’라는 생각 이전에 있습니다.
이 삶은 하나의 꿈입니다.
삶을 꿈이라고 부르는 것은
삶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며,
삶이 가치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삶은
당신이 밤에 꾸는 꿈과 다를 바 없습니다.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깰 때,
당신은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꿈으로 깨어나며,
잠이 들 때는
또 다른 꿈 세계로 깨어납니다.
하지만
양쪽 세계에서 늘 깨어 있는 것,
그 꿈꾸는 자는 언제나 똑같습니다.
알아차림은 언제나 현존합니다.
‘그것’이 바로 실재입니다.
오고 가지 않는 것,
심지어 꿈의 상태에서도
오고 가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참된 당신입니다.
질문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는
환상이나 꿈과의 잘못된 동일시를
놓아 버려야만 한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동일시가 바로 문제인 건가요?
대답
모든 장애물은 생각이나 믿음,
견해로 이루어진 관념적인 것들입니다.
관념과 믿음 말고는
아무런 장애가 없습니다.
믿음이란
마음이 텅 빔을 채우기 위해 하는 것이며,
마음이 자기에게 바라보고,
가지고 놀고,
숨을 것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질문
그렇다면 우리의 판단과 해석,
관념과 믿음들은
조건화(conditioning)된 것이 드러난 것이군요.
대답
예.
관념과 믿음이 없으면
조건화도 없습니다.
관념과 믿음들을 가져야만
분리된 개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질문
무언가 되려는 것을 그만둘 때,
우리는 무엇을 발견합니까?
대답
평화, 중지, 영원한 참나.
투쟁은 끝났습니다.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질문
상황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것과
상황에 맞서 싸우는 것을 조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삶에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면 안 되고
무기를 들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느껴지는 영역들이 많습니다.
대답
맞서 싸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대립은 분리된 자아가 취하는 태도입니다.
진실한 것을 행하십시오.
진실한 것을 행할 때는 대립하는 태도가 없습니다.
질문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는 건
제 마음에 옳게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그건 비겁한 일일 겁니다.
때로 상황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기만 하면
비겁함에 빠질 수 있습니다.
대답
진리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려 주도록 허용하십시오.
질문
그런 종류의 행동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행동이 옳은가 하는 느낌에서 나오는 건가요?
대답
그것은 느낌 이전의 것입니다.
질문
좋지 않은 결과가 예상되더라도 그래야 합니까?
대답
진리는 결과에 개의치 않습니다.
진리는 진리에 관심이 있습니다.
진리는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항상 당신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그 때문에 사람들이 당신을 싫어할 것입니다.
당신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바,
또는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바에 따라
세상에서 행동하는 한,
당신은 진리의 세계에 있지 않습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진실할 뿐만 아니라
진실하게 행동하기를 요구합니다.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당신이 바로 진리여야만 합니다.
진리를 실천하고
진리를 행해야만 합니다.
영적인 사람들 중에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초월하려 하고,
없애려 하며,
그것에서 벗어나고 도망치려 합니다.
그런 ‘느낌’에는 잘못이 없지만,
그런 접근법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옷을 입은
현실도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옷과
영적인 개념들을 입고 있지만,
실은 더 이상의 고통을 원치 않는
시궁창 속의 주정뱅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모든 것을
완전하고 충분하게
받아들이고 감수할 때,
당신은
저절로 초월하게 됩니다.
모든 믿음과 개념은
진실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모두 던져 버리고,
침묵의 불길이 그대를 불살라
깨어나게 하십시오.
질문
저는 진리에 헌신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대답
다른 무엇보다 진리를 더 원하는 순간,
당신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원래 그런 법입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질문
그런 선택을 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까?
대답
당신이 그러기를 원한다면, 그렇습니다.
질문
그런 선택을 계속 반복해야 합니까?
대답
더 이상 선택할 필요가 없을 때까지
계속 그런 선택을 하십시오.
질문
저는 그것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포기할 만큼 간절히 원합니다.
대답
당신은 그것을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마치 안 가진 척하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질문
어째서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대답
그들은 여전히 꿈속에서 얼마간의
오락거리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