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알아차림

竹隱죽은 2024. 2. 25. 23:13

 

 

명상을 시작하는 많은 사람들은 

만약 그들이 

그들의 생각에 빠지지 않으면 

 

 

어떤 공백의 아무것도 없는 

무(nothingness)라는 느낌의 상태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계속 

생각이 만연한 살아 있는 느낌과 

관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운문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습관적인 생각을 인식하지 않을 때 

이 생각들은 

스스로 그들이 머물렀던 공간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이 아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운문은 말한다. 

 

“알아차림의 빈 공간은 

  법계체성지와 다르지 않다.” 

 

‘법계체성지

(wisdom of the absolute expanse)’는 

 

모든 것에 퍼져 있고 

모든 것을 에워싸고 있으며,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알아차림과 분리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알아차림이 가득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 알아차림은 

유형적이거나 견고한 어떤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알아차림의 빈 공간이다.

 

우리가 우리의 

습관적인 분별 패턴을 확인하면 

 

즉시 이러한 알아차림은 

길들이기와 습관적인 

분별의 과정에 의해 장악된다. 

 

공간의 감각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견고하고 

현실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가 이들 

“무지에 의해 주조된 생각”을 

직접 보는 수행을 하면 

그것들은 스스로 자유로워진다. 

 

그것들을 묶어두는 것이 사라지고 

따라서 그것들은 용해된다. 

 

남는 것은 

공간과 분리될 수 없는 

마음의 타고난 알아차림이다.

 

우리가 

이러한 타고난 마음의 알아차림을 

느끼고 그것을 신뢰하기 시작할 때, 

 

알아차림 안에서 쉬는 것은 

집으로 돌아오는 느낌과 같다. 

 

이때 

우리의 모든 삶에 중독되어 있던 

습관적 패턴의 미로는 

그 마력을 잃기 시작한다. 

 

우리는 

 

 

습관을 하나의 감옥으로 보고 

자유로서의 널찍한 알아차림의 느낌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그러면 

또다시 계속해서 

똑같은 낡은 이야기에 끌려가지 않는 

더 많은 추동력이 생긴다. 

 

이것이 

모두를 아우르는 공간의 지혜가 

우리의 경험 안에서 

스스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무지가 노출되는 방식이다. 

 

우리가 할 일은 

끌려가지 않고 모두를 아우르는 

공간의 지혜에 

우리를 맡기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집으로 데리고 간다. 

 

이러한 과정은 

서두를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신의 시간에 

그 자신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알아차림이 

태어난 집으로 돌아오는 

이 감각을 

 

위대한 티베트의 스승 

라마 겐둔(Lama Gendun)은 

아주 놀랍게 표현하였다.

 

 

좋은 경험 혹은 나쁜 경험이라는 

현실에 속지 마라.

 

그것들은 무지개와 같다.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하면 

기진맥진할 뿐.

 

잡으려고 하는 것을 놓아버리면

 

거기에는 열린, 초대된 

그리고 편안한 공간이 있다.

 

그것을 활용하라. 

 

모든 것은 이미 당신의 것.

 

더 이상 구하지 마라.

 

밀림의 미로 속으로 들어가지 마라.

 

당신이 찾던 코끼리는 

이미 집에 조용히 있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아무것도 애쓰지 마라.

 

아무것도 원하지 마라.

 

모든 것은 저절로 발생한다.

 

 

  - 마음챙김과 통찰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