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알아차림
알아차림을 바다에 비유하자면,
생각은 수면에서 움직이는 파도이며
느낌은 그 밑에서 흐르는 해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파도와 해류가 바다의 움직임이나 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듯이, 마음은 알아차림의 움직임이나 활동입니다.
바닷속 깊은 곳은
언제나 고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알아차림의 중심은
항상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따라서 마음이 그토록 갈망하는 평온함을 얻기 위해서는 알아차림의 중심으로 가라앉아야만 합니다.
루미Rumi는 이렇게 말했지요.
“점점 넓어지는 존재의 고리 안에서
아래로 또 아래로 흘러내려라.”
파도나 해류가 바닷속 깊은 곳을 향해 ‘아래로 아래로’ 흐르게 되면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넓어”지다가
결국 언젠가
움직임을 멈추게 됩니다.
활동이나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파도나 해류는 자신의 형태를 잃게 되며,
그 결과
자신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파도와 해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독자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파도와 해류는
그저 물의 움직임일 뿐입니다.
파도와 해류가 일어난다고 해서
물이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파도와 해류가 잦아든다고 해서
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파도와 해류가 일어난다고 해서
새로운 존재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잦아든다고 해서
어떤 존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은
자신의 본질로 점차 가라앉으면서
고요해지고 넓어집니다.
그 내면의
유한하고 조건적이며 제한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본질적이고도 환원 불가능한 정수로
드러나게 됩니다.
명료하고,
환히 빛나는 고요한 알아차림이
드러납니다.
마음의 파도가
생각, 이미지, 느낌, 감각,
지각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새롭게 생겨나는 존재는 없습니다.
마음의 파도가 잦아들 때에도
존재하던 것이
사라지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바가바드기타』 2장 20절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것은 존재하기를 결코 멈추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생겨나지도 않는다.”
바다의 표면에서 움직이는 파도와 그 밑에서 흐르는 해류는 그저 바닷물 자체 안에서 움직이는 형태 없는 물에 불과합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생각, 상상, 느낌, 감각, 지각은
단순히 알아차림의 내면에서
움직이는 알아차림 자체일 뿐입니다.
그것은 비록
여러 가지 다양한 대상적 경험으로 나타나지만,
결코 자신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이 되는일도 없고
다른 어떤 것을 알게 되는 일도 없습니다
-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