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보는 자

竹隱죽은 2022. 4. 23. 07:42

 

어떤 노선사老禪師는 

깨달음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사원의 종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거기엔 종도 없고 나도 없었다. 

   단지 종소리만 있을 . ” 

 

 

 

관세음보살의 깨달음도 

그런 실험을 통해서였다고 전해진다. 

 

듣는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듣는다고 하는 흐름 자체 이외에는 

분리된  또는 듣는  

따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주관적인 듣는 자를 들어보려고 

아무리 애써도 들리는 것은 

객관적인 소리들뿐이다. 

 

 말은 

 

 

당신이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소리가 하나라는 의미이다. 

 

 

당신은 한발 물러선 자리에서 

듣는 행위로써 들리는 소리 

듣는  아니라, 

 전부와 하나인 것이다.

 

 

이것은 

보는 과정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시야 전체를 주의 깊게 바라볼 경우, 

시야에 들어온 모든 것이 

 

 

 

거의 공간에 진열된 것처럼, 

 

허공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야는 

여기에는 산의 모양을, 

저기에는 구름 모양을, 

 아래에는 시냇물을 이루면서 

빛과 색채와 음영으로 짜여진 

한없이 풍요로운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있는 모든 광경 중에서 

당신이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여전히   없는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광경을 보고 있는 

보는 이다.

 

 

  

보는 자를 보려고 노력할수록, 

보는 자가 없다 사실에 

더욱 곤혹스러워진다. 

 

오랫동안 스스로  광경을 보는 

보는 라고 생각하는 편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보는  찾으려 하는 순간, 

나는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한다. 

 

보는  보려고 

고집스럽게 계속 애써봐도 

실제로 발견할  있는 것은 

오직 보여진 사물들뿐이다. 

 

이것은 

 

보는  내가 

광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내가 

지금 나타나 있는 모든 광경과 

 덩어리임을 의미한다. 

 

 

 

 

소위 보는  

보여진 사물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내가 

 그루의 나무를  , 

나무라는 하나의 경험과 

나무를 본다라는 

 다른 경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엔 

 

 

단지 나무를 본다는 

단일한 경험만이 있을 뿐이다. 

 

 

 

내가 냄새 맡는 행위 냄새를 맡거나, 

맛보는 행위 맛을 보지 않는 것과 똑같이, 

나는 보는 행위 보지 않는다.

 

경험과 동떨어져 있는 

 자신을 찾으려  때마다, 

그것이 마치 

경험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보인다. 

 

경험하는  찾으려 해도 

우리는  

 다른 경험만을 발견하게 되며, 

 

 

 

주체와 객체는 

언제나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만이 폭로된다. 

 

 

 

이는 꽤나 

안절부절못하게 하는 경험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앞으로

 밀어붙여 보자.

 

 

 

당신은 지금 이런 문제를 숙고하고 있는 

 생각하는  발견할  있는가? 

 

 

 

다시 말해서, 

나는 혼란스럽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생각하는  있는가, 

 

아니면 단지 

나는 혼란스럽다라는 

 

 

 

 

생각만이 있는가? 

 

 

 

 

분명히 

현재의 생각만이 존재한다. 

 

 

 

만일 당신이 

생각하는  발견했다면, 

그것은  이상 생각하는  아니라 

생각의 대상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라고 믿고 있는 실체가 

 

사실은 

 

 

현재 생각의 흐름 

 자체일 뿐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와 같이, 

당신은 

 

지금 나는 혼란스럽다 

생각함과 동시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생각하는  

인식하지 않는다. 

 

거기엔 단지 

 

 

 

나는 혼란스럽다라는 

현재의 생각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런 생각을 생각하는  

찾아내고자 했을 , 

 

당신이 찾아낸 것은 그저 

지금 나는 혼란스럽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의 

현재의 생각이었다. 

 

 

결코 현재 생각 분리되어 존재하는 

생각하는  발견할 수는 없다. 

 

 

이는 

 둘이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현자들이 

 없애려고 애쓰지 말고 

단지 그것을 찾아보라고 권유하는 이유는 

바로  때문이다. 

 

 

 찾으려  경우,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내가 없다 사실뿐이기 때문이다.

 

 

    - 무경계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