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미래라는 생각을 잠시 접어두면
우리는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직선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을 마치 우리가 결정권을 가지고 정한,
그래서 나누어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현재’란 과거와 미래 사이의
지극히 짧은 몇 분 또는 몇 초라고 이해한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흐르는 것이며,
나눌 수는 있는가?
밤 열한 시에 들어온 사람을 늦게 들어왔다고 하며,
새벽 한 시에 귀가한 사람을 일찍 들어왔다고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봄에 피는 꽃은 빨리 피는 꽃이며,
가을에 피는 꽃은 늦게 피는 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들어올 때가 되어 들어온 것이고,
꽃필 때가 되어 꽃이 피었을 뿐이다.
어디에 늦고 빠른 것이 있겠는가.
페인트의 아름다운 색상이 검은 콜타르에서 추출되듯이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또다시 시간관념이 내포된다. 만약 우리가 시간이라는 관념에서 잠시 비켜서기만 하면,
즉 과거 현재 미래라는 생각을 잠시 접어두면
거기에는 어떤 연결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외로운 산봉우리 위에 있는데
몸을 비켜 빠져나갈 길이 없고,
또 한 사람이 네거리에 서 있는데 또 향하는 곳이 없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가?
우리의 감각기관은 대상세계를 지극히 제한적인 부분에서만 감지할 뿐, 더 넓고 무한한 세계는 우리가 알 수 없다. 따라서 감각기관으로 감지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넓은 영역을 없다고 주장하거나, 감지되는 부분만이 존재한다고 고집할 수는 없다.
‘대나무 통 구멍으로 보는
하늘(管中之天)’만이 하늘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감각기관에만 의지한다면,
환상을 실상으로
또는 가짜를 진짜로 착각할 수도 있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만
그것은 지구의 자전현상에 대한 감각기관의 착각일 뿐이다.
이처럼 감각을 통해 인식되는 것들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한정된 전제들이다.
설령 아무리 뛰어난 과학기술과 도구가 개발되어 놀라운 정보를 알아낸다 해도 그것 또한 감각기관에 한정된 의식의 필터를 통해서 다시 번역하고 인식해야 하므로 결국은 한정된 정보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막힌 곳이 담장이 아니니
통한 곳을 허공이라 하지 마라.
만약 사람이 이 이치를 알면
마음과 물질이 본래 같음을 알리라.
감각으로 느끼는 현상이란
곧 감각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정된 관점의 반영물일 뿐이다. 이는 마치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인식이, 풍경이 자기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과 같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될 때 차창에 비치는 낮선 풍경들이 새롭게 다가오고 사라져 간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다가오는 것도 사라져 가는 것도 아니다. 단지 눈에 비친 대로 그렇게 느낄 뿐이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는 것은
사실 말의 표현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펼쳐지는 것은 없으며,
그 무엇이 나타나는 것 또한 아니다.
오직 그렇게 느끼고 있는,
또 그렇게 느껴가는 과정만 있다.
만약 우리가 시간의 관념을 넘어설 수 있다면,
사실 형태를 갖지 않는 존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음(陰)과 양(陽)이라든지
나타나는 것과 나타나지 않는 것이거나,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부분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그 모두가 그 자체로 온전한 것,
즉 궁극적인 실재(實在)로 드러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을 감각의 범위 안에 한정시키지 않는다면,
완전하지 않게 보이는 현상도
완전성의 일부로 다가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 모두가 동시에 참된 세계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다.
그렇게 보면 창조라는 것도
사실은 계속되는 것이거나,
전혀 있을 수 없는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창조의 시점을 계산하며
‘태초에’란 말을 전제하는 것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시간 개념의 산물이다.
시간 밖에 존재하는 어떤 것의 ‘시작’을
시간 속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물이나 현상을 나타나게 하는 객관적 실재의 근본적인 성질에 대해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감각기관에 한정된 의식의 울타리 밖으로 나서야 한다.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은
나와 대상을 이분화시킴으로써
필연적으로 감각기관의 한계만큼만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시간과 공간이란
이미 완전하게 정립된 홀로그램을 인식하는 한 시점,
즉 시간과 공간이란 관점의 이동에 따라 나타나는
주관적이고 감각적인 결과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감각으로 느끼는 우주의 변화는
시작이나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이미 온전하게 존재한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의 개념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오로지 ‘나’와 ‘나 아닌 것’을 분리하는 일을 멈출 때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나’를 고정적이고 연속적인 실체로 생각하는 한,
‘나 아닌 것’들의 변화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험이
시간과 공간의 개념으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즉 그런 개념 속에 묶이는 것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
깨달음
일상을 여유롭게 만드는 마음의 기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