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신을 잊는 그 순간
어떤 스님이 방 안에서 경을 읽고 있는데, 도응선사가 창밖을 지나가다가 그 소리를 들었다.
‘그대가 읽고 있는 경은 무슨 경인가?’
방안에서 경을 읽고 있던 스님이 대답했다.
‘유마경입니다.’
‘유마경을 물은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놈은 무슨 경인가?’
그때 중이 퍼뜩 깨달았다.
「傳燈錄」 道膺禪師
모든 존재가 변한다면
인간 역시 그 법칙을 벗어날 수 없으며,
몸도 마음도 시시각각 변한다면
마땅히 나를 ‘나’라고 할 그 ‘나’도 없다.
그런데도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이고, 내일의 나일 것이다’고 굳게 믿는다면 그 믿음이 잘못된 것이다. 그릇된 신념을 아무런 생각 없이 그대로 믿고 있을 뿐이다.
현재를 현재로써 느끼고자 한다면,
즉 ‘지금, 여기’를 온전하게 느끼고 싶다면
바로 그 믿음이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잘못된 믿음을 고집하는, 다시 말해 그렇게 생각하는 과정을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 길에서 ‘나’를 시시각각 변하는 존재라고 자각할 수 있다면 현재를 현재로써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언제든지 열려 있다.
온전한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수많은 방법들이 제시되어왔지만,
그 방법들의 근본적인 공통점 역시
‘나’를 지속적인 실체라고 믿는 생각이
허구임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
사실 우리가 지속적인 실체로서의 ‘나’를 믿는다는 것은
세계와 ‘나’를 분리하는 구속이자 속박이다.
어떤 행자가 물었다.
‘마음이 곧 부처라고 했는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어느 것이 부처가 아니라고 의심하는가? 지적해보라.’
그가 대답이 없으니, 대사가 말했다.
‘통달하면 온 세계가 모두 부처요, 깨닫지 못하면 영원히 어긋난다.’
「傳燈錄」 大珠慧海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욕망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서
‘내가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지배하는 욕망과 집착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순간순간 이런 충동을 자각할 때,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반성해보기도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래도 내가 나인데’라는 욕망이 우리를 되돌려놓는다.
사실상 ‘나’라는 생각이 ‘내 생각’을 만들고, 그로부터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내가 나쁘다는 생각을 일으키니, 오히려 그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사건이나 갈등이란 것은 스스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분별하는 생각에 따라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과 일어나는 일들이
처음부터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사람은 사람대로 일은 일대로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이원론(二元論)을 벗어날 수 있다. 이원론이란 다름 아니라 서로 대립되는 두 개의 원리나 원인으로써 세상을 보려는 태도를 말한다. ‘나’를 실체화한다는 것 역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고 분리하는 일이다.
이원론을 벗어난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자면,
주어진 가치와 관념의 부정이다.
이를테면
솔밭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를
‘있는 그대로’를 듣는다면,
거기에는 바람소리 이외의 어떤 의미도 없다.
그 소리가 어떤 음악을 흉내 내거나,
음악 이외의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솔바람 소리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음악이거나 리듬이거나 간에
기존의 관념에서 해방되지 못한 것이다.
만약
솔바람 소리를 진정으로 듣는다면,
거기에는 아무런 해석이 필요하지 않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기성의 가치나 의미를 넘어서는 경험을
‘있음’ 혹은 ‘존재 자체’라 한다.
이를 달리 ‘있는 그대로’라고도 할 수 있다.
이때 마음은
그것과 나누어지지 않는 하나가 된다.
이는 곧 분리란
‘나’를 고집함으로써 나타나는 느낌이며,
오히려 그 느낌에 집착함으로써 생기는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원론을 넘어선다는 것은 ‘나는 이것이다’라든지 ‘나는 저것이다’라는 것과는 다르다. 있는 그대로를 느끼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되짚어 물어야 한다.
자신을 구속시키는 기억에 기반을 둔 습관과
‘나’라고 생각하게끔 지속성을 부여하는
집착을 알아차려야 한다.
우리는 가끔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닷가 바위 위에서, 내가 파도이고 파도가 나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또는 부드럽고 안온한 풍경 속에서 마음의 평화로움을 느끼거나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산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볼 때나,
신비롭게 피어 있는 작은 들꽃을 볼 때,
가슴 가득하게 환희로 넘치는 그런 때가 있다.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잊는다.
묘하게도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우리 자신을 잊는 그 순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경험을 한다.
‘나’를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나, 온전한 나를 되찾게 된다.
그것이 곧 깨달음이다.
일상을 여유롭게 만드는 마음의 기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