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무념법(無念法)이란 무엇인가?

竹隱죽은 2020. 10. 29. 05:00

무념법(無念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각이 하나도 없는 법’이라는 말이 아니라 

한 생각 일어남을 되물어 주는 까닭이며, 

무념이 도리어 유념임을 아는 것이다. 




우리가 무념이란 말에 쫓아 가서 생각을 비우려고 하면 이미 유념이 되고, 무념이란 말에 쫓아가지 아니하고 ‘무념이 무엇인가?’라고 되물어 주는 것을 도리어 무념법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한다. 

 

무념법을 깨달으면 만 가지 법에 다 통하게 된다 하는데, 이는 세상 만법(萬法)이 모두 하나로 돌아간다고 할 때에 그 하나는 이미 만 가지가 아니며 이미 하나의 숫자가 아니며 다시 ‘이것이 하나다’라고 지적할 것이 없다. 

 

때문에 만법이 무념이고 무념이 만법인 것이다. 무념이 만법이라고 한다면 어째서 우리는 세상 만법에 걸리는 것일까? 

 

그것은 무념이란 것이 또 다시 유념으로 되어버리므로 

스스로 속이고 속는 때문이다. 

 

“겁초(劫初: 아득한 시간의 처음) 이래로 이치로는 부처 아닌 자 없으나 사상(事相: 현실적)으로는 성불(成佛)할 자가 없다”고 육조 스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견성하기는 쉬워도 승(僧: 스님) 노릇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경계가 나타날 때마다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기에 부처를 이룰 수 없는 까닭에 도리어 늘 “부처에 귀의하라.” 하는 것이며, “부처에 귀의한다,” 함은 곧 한 생각 돌이켜 되물어 주는 일이 최우선이리라. 그리하여 스스로 속지만 않는다면 만 가지 법에 다 통하게 된다 하시었다.

 

“무념법을 깨달으면 모든 부처님들의 경계를 보게 되며 무념법을 깨달으면 부처님 지위에 다다르리라”고 하는데, 모든 부처님들의 경계란 무엇이며, 부처님 지위란 과연 있는 것인가? 



모든 부처님들의 경계란 

오히려 경계가 없는 것을 말하고, 

이는 곧 무념법을 말함이다. 



부처님 지위라고 하니, 깨달음의 단계란 무엇이며 또 왜 단계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대저 아는 자는 묻지 못하니 이는 안다고 하는 생각 때문이며, 모르는 자 또한 묻지 못하니 이는 모르는 것 조차를 모르는 까닭이므로 물음이란, 모르는 줄 알 때 비로소 물음을 스스로 배우는 것이다.

 

여러 부처님들과 조사(祖師)들이 이를 실천한 이들이며 그 까닭에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즉시견성(是卽見性)이라’ 





‘다만 알 수 없음을 알면 

 바로 성품을 봄이니라’ 




하시었다. 

이것은 우리가 묻고 답하는 가운데 신심을 내는 정도가 사람마다 달라서 어떤 이는 깊이 쓰고 어떤 이는 얕게 쓰므로 축적된 업이 허물어 지는 인연이 달라 비록 선업이라 하나 쌓이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빨리 깨닫고 늦게 깨닫는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이때 큰 신심을 통하여 즉 화두로 돌이키는 힘이 크면 곧장 무념법을 터득하여 필경 육조 스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마찬가지로 부처님 지위에 이르기까지 계속 묻고 대답하여 가리라. 

 

그러나 문제는 

 

부처님 지위에 이르기까지라는 말은 

자기 자각이요 

실제로 있는 단계가 아니니 

삶이 있음에 육체와 정신이 마치 

따로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언제나 우리는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이 무슨 도리인고?’라고 

반드시 스스로 물어볼 때 

스승에게서 배우지 않은 지혜가 저절로 우러나오며, 

부처님 지위를 스스로 증득하기에 이르므로 

화두로 돌이킨다고 하였다.

 

 

   육조단경으로 자성 보는 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