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심이 곧 도
하늘이 무엇을 말하더냐?
사시(四時)가 운행되고 만물이 생겨나지만,
하늘이 무엇을 말하더냐?
『論語』 陽貨
하늘이 운행이 변함없기에 사계절은 때맞추어 돌아가고, 그 속에서 만물은 번창하지만 하늘이 관여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구름이 동쪽으로 흘러가면 서쪽으로 가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서쪽으로 가면 또 서쪽으로 간다고 투덜거릴 뿐이다.
그러나 스승은 제자가 차를 가져오면 차를 마시고, 합장을 하면 같이 고개를 숙이면서 하늘처럼 제자를 대함으로써 분별심을 내려놓은 경지를 온몸으로 가르친 것이다.
이처럼 깨달음이란
논리적인 이론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로 드러난다.
바로 여기에 현실에서 현실을 바꾸는 삶이 가능하게 된다. 현실을 바꾸는 삶이란 현실에서 현실적이지 않은 자유를 찾아내는 일이지만, 이 또한 관념적이며 일시적인 자유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를 새롭게 하는 일이다. 깨달음이란 이치로도 현실을 떠날 수 없고, 심리적으로도 현실과 괴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을 되돌아보며 분별심을 내려놓는 일은 그것이 어떤 방법이든지 간에 모두 수행이 된다. 산속으로 가서 머리 깎고 앉은 것만이 수행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 속의 일상 모두가 곧 수행이다.
일상이 펼쳐지는
‘바로 그 자체’를 온전하게 느끼는 일이다.
그것을 느낄 수 있다면,
차 마시고 인사하는 일 역시
새삼스러운 감격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옷을 입어야 할 때 옷을 입어라. 걸어야 할 때 걸어라. 앉아야 할 땐 앉아라. 부처를 찾겠다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갖지 말라. 일부러 부처를 찾는다면 부처가 바로 너의 번뇌다. 똥 누고, 오줌 싸고, 옷 입고, 밥 먹어라. 피곤하면 가서 누워라.
「臨濟錄」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깨달음이란 그와 같은 일상의 행위를
온전하게 느낀다는 뜻이다.
삶은 이해나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다.
깨달음 역시 항상 순간순간 대면하고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은 우리 자신의 거짓된 그림자, 즉 우리 내부의 사랑과 미움의 투영일 뿐이다. 깨달음이란 다름 아니라 개인적인 편견으로부터의 자유, 바로 그것이다. 그것을 누릴 수 있다면 온전한 세상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느낀다는 것 역시 단지
사사로운 편견들을 살핌으로써
거짓된 자신의 그림자를 알아차리는 것,
그것뿐이다.
조주 :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남전 : 평상심(平常心)이 도다.
「傳燈錄」 趙州從諗
편견으로부터의 자유,
즉 온전함에 대한 깨달음이 일상으로 이어진다면
일상적인 행위 자체가 모두 도의 표현이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유라는 말이 지니는 가장 깊은 의미다.
여기서 말하는 평상심(平常心)이란 목표를 세워 도달해야 하는 이상도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본래 당연히 그렇다고 여기는 원리 또한 아니다. 평상심이란 그것을 떠나 있을 수도 없는 근원적인 마음, 즉 무한히 충실하면서도 본래의 것 그대로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무엇이라고 할 수도 없는 마음이다.
달리 말하자면 ‘평상(平常)’이란 말 자체가 그런 뜻이지만, 언제 어느 때나 어떤 상황에서나 그리고 어떤 문제에서나 일관되는 그런 상태를 의미한다. 일상적이지만 동요가 없는 부동심(不動心), 이것이 바로 평상심이다.
그렇다고 세상에 귀를 막고 초연하게 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런 감정도 없고 생각도 없이 나무토막처럼 살라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능히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평상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다만 좋아하고 싫어하지 않으면 된다.
『信心銘』
깨닫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상념들을
‘내 생각’이라고 짐작하는 일을 거부하는 일이다.
어떤 생각을 ‘내 것’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그 생각이 나를 지배하는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내 것’으로 인식하며 그 생각에 빠지거나
그 생각을 따라간다
만약 ‘나’라는 생각을 내려놓게 되면,
즉 좋고 싫음을 가리는 분별에서 벗어나게 되면
생각들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과정을 무심하게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평상심을 회복했다고도 하며
도를 깨달았다고도 한다.
그래서 ‘평상심이 곧 도’라고 한 것이다.
깨달음 일상을 여유롭게 만드는 마음의 기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