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우침의 노래
삼세제불 三世諸佛
의반야파라밀다고 依般若波羅密多故
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得阿耨多羅三藐三菩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깨우친 사람이란
깨우침이 그를 통하여 드러나
모든 것과 하나된 사랑이다.
삼세는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심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공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삼세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이란
마음이 창조한 관념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오직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고 현재는 한 자리에 그대로 머무르지 않으며 미래는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스쳐 지나갈 때만 느껴볼 수 있는 우리의 간절한 희망일 뿐이다. 순수한 의식으로서의 “내가 있다”라는 현존의식만이 영원하다.
이런 이유로 삼세제불에서의 삼세를 번역하지 않았으며 삼세가 본래 없는 것이라면 그 안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모든 부처님 역시 그 의미가 퇴색된다.
삼세제불을 모든 부처님이라 하지 않고 깨우침과 하나 되신 분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제불 즉 “깨우치신 분”이란 어떤 분일까?
조계종단 표준의례 한글반야심경에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라고 쓰여있다.
부처님은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하면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지 못한 상태에 계시다가 뼈를 깍는 수행을 통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된다. 우리 대다수가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으려고 한다거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불교의 핵심사상인 공과 무아사상을 부정하는 일이다.
깨우침이란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개체적 자아가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란 내가 깨달음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이 문장을 “깨우친 사람이란 깨우침이 그를 통하여 구현됨으로써 모든 것과 하나된 사랑이다.”라고 번역했다. 진정으로 무엇을 안다는 것은 앎가 하나가 되는 일이며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과 하나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깨우침이란 깨우침을 탐구하는 자를
사라지게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면 깨우침을 탐구하는 자도 없고
얻을 대상인 깨우침도 없으므로
이 상태에서는 자신을 알지 못하는
존재 그 자체와 순수한 의식이 남게 된다.
인식의 측면에서의 깨우친 사람이란 모든 것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주시자이다. 그는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앎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생명과 하나이며 그 하나됨을 표현하는 사랑이며 자비로 존재한다.
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
(anuttara-samyak-sambodhi)의 번역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산스트리스트어를 한문으로 음역한 이 단어의 아(a)는 무無자에 해당하며 뇩다라(nuttara)는 ‘그 위에 다시 없는’ 이라는 의미이므로 무상無上이라는 뜻이 된다. 그 다음에 나오는 삼막(samyak)은 ‘올바름’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삼보리(Sambodhi)는 ‘일체에 두루한 지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그 위로 더 없이 올바르며 일체에 두루한 지혜를 얻었다”라고 번역하면 되겠지만 이렇게 지혜를 찬양하면 할수록 그 지혜가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질 가능성이 존재하게 된다. 있지도 않고 잃어버릴 수도 없는 지혜를 찬양한다는 것을 어리석은 일이 될 뿐인 것이다.
생명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성경말씀(출애굽기 3장 14절)을 참고해 본다면 모든 종교가 참구하는 근원적인 진리에 대한 표현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가 있다.
한글 성경……………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한자 성경……………자재자自在者 또는 자존자自存者
영어 성경……………I am who I am. Or I am that I am.
‘아뇩다라삼막삼보리’로 가는 길에는 둘이 있다고 진인들은 말한다.
그 중 하나는 지知의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무지였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것이 지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지無知는 내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 깨우침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몸과 마음을 통하여 작용하고 있는 개체적 자아가
실재하고 있다는 믿음을 비우는 일이다.
몸과 마음이 나의 주체이며 실체라는 우리의 믿음이
꿈과 같이 무상한 관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행이란 무지無知의 상태로부터 출발하여 지知의 길을 따라나섬으로써
나의 본래 성품이
나를 인식하지 않는 존재 그 자체이며
순수한 의식의 바다라는 진실을 깨우치는 일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의식으로서의 내가 생명이며 사랑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됨으로써 상대적 개념들은 마른 낙옆처럼 흩어지고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침묵으로서의 공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붓다께서 심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깨우침의 노래이다
시詩,반야심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