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의 감각
생生의 감각
사람이 생을 살다보면 절망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물론 인생을 평안하게 사는 사람들도 간혹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두 번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극심한 절망을 겪어 보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했다든지,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처지라든지, 느닷없는 사고를 당했다든지, 시험에 떨어졌다든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든지, 별의별 사건들로 인해 절망하는 일들이 살다보면 분명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사이자, 인생사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지인 한분이 고혈압으로 일주일동안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났습니다. 그 분 말씀이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했습니다. 거의 죽음 직전 까지 갔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하늘은 살아 있을 때 그저 평범하게 보았던 하늘하고는 전혀 다른 하늘 일 것 같습니다. 아름답고 찬란하고 어떤 안도의 하늘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삶에 대한 애착이 오히려 더 강하게 일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불교인 입장으로 보면 생에 대한 강한 의지를 꼭 찬성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생을 포기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자연스러움을 이야기 하고 싶을 뿐입니다. 생에 대한 집착보다는 생에 대한 여유와 균형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몇 년 전에 한창 유행하던 말 중에는 웰빙이라고 해서 ‘잘 사는 법’을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삶’이 요즘 많은 사람들의 대세가 되어버렸습니다. ‘구구팔팔’ 이라는 말이 있듯이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이 구호 아닌 구호가 현대인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건강하게 오래살기 위해 현대인들의 노력은 여러 곳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운동을 하고, 요가를 하고, 등산을 하고, 헬스장에 다니고…… 그러나 이 웰빙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잘살기만을 원한다면? 그리고 태어남만 있고 죽음이 없다면? 만들어지는 것만 있고 없어지는 것이 없다면? 이런 생각을 하면 저는 왠지 암울한 기분이 듭니다.
물론 건설만 있고 파괴가 없는 세상이나, 죽음이 없는 인생을 생각해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만약 생각해본다면 그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 그 끝은 균형을 잃어버린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보내지 않는 팔레스타인의 사해처럼 결국은 죽음의 바다가 될 것입니다.
생(生)이 있으면 반드시 사(死)가 있어야 하고,
들어온 것이 있으면 반드시 나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강물은 흘러가야 깨끗한 물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벌기만 하고 쓰지 않는다면 그 돈은 벽장 속에 쌓아둔 종이에 불과 합니다. 유용하게 소비 해줌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돈을 벌고, 돈을 번 그 사람들의 가정이 유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넒은 관점에서 보면 주는 것도 없고, 받는 것도 없습니다.
얼마 전 제 도반이 길가에 놓아둔 새 자전거를 잃어 버렸습니다. 걱정을 하는 제게 그 도반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전거는 잃어버린 게 아니야. 내가 안타면 누군가 타겠지…….”
아, 그때 저는 그 도반을 새롭게 보았습니다. 자전거는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생각. 그것이 바로 도인의 생각이고, 그것이 바로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불생불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면
잃어버린 것도 없고, 얻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나의 소유에서 다른 사람의 소유로 넘어갔을 뿐입니다.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대(물, 불, 공기, 흙)가 모여 있다가 한 생을 이루고, 그 생이 다하면 다시 사대로 흩어집니다. 따라서 사람의 생(生)과 사(死)는 사대가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인연에 따라 흩어진 것으로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늘어 난 것도 없고 줄어 든 것도 없습니다.
단지 모양만 달리 했을 뿐입니다. 물론 우리의 삶을 육체적 관점에서 본다는 비난이 있겠 지만.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오히려 본래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늙고 병듦은 추한 것이 아니라
본래로 돌아가기 위한 하나의 준비 과정인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 앞에서 두려움 때문에
생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자연 현상이고 흘러가는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합니다.
붓다 시대에 고타마 라는 젊은 여인이 살았는데 그녀의 첫아이가 1년 만에 죽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녀는 시신을 안고 아기를 되살리는 약을 달라고 거리를 미친 듯이 떠돌아다니지만 사람들은 ‘미쳤다’라고 손가락질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붓다에게 한번 찾아 가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녀는 붓다를 찾아가 아기의 시신을 보여주며,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말해달라고 합니다. 이에 붓다는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기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마을에 들어가서 죽음을 겪지 않은 집안이 있거든 그 집에서 겨자씨 하나만 구해 오십시오.”
그녀는 큰 희망을 품고 마을에 달려가 죽음을 겪지 않은 집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겪지 않은 집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결국 아기의 죽음을 인정하였고,
수행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흔들림 속에 고요함이 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