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있음과 없음

竹隱죽은 2020. 8. 9. 06:07



  모든 법은 본래 공하여 집착할 바 없는 것이

 

  참으로 뜬구름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과 같네.

 

  본성이 원래 공한 줄을 홀연히 깨달으면

 

  흡사 열병을 앓다가 땀을 흘리는 것과 같네.

 

  지혜가 없는 사람 앞에서는 말하지 마라.

 

  그대의 몸을 두들겨 패서 마치 별이 흩어지듯 하리라.

 

 

강 설 

 

제법(諸法)은 세상사와 인생사 모든 것이다. 재산도 명예도 다 제법이다. 사람도 산천초목 산하대지도 다 제법에 속한다. 죽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미워함도, 울고 웃고 기뻐하고 분노하는 일, 삶과 죽음까지도 모두 제법이다. 



그 모두가 소중하고 귀한 것이지만 

조금만 깨어 있어도 그것들이 모두 텅 빈 것임을 안다. 

텅 빈 것이므로 집착하여 울고불고할 것이 없다. 

실재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결코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공 화상은 제법이 마치 뜬구름이 모이고 흩어지듯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홀연히 이와 같은 이치를 알면 흡사 열병을 앓다가 땀을 흘리고 나서 몸이 가뿐하여 날아갈 것만 같다고도 하였다. 

 

이런 사실을 물질과 사람에 찌들고 온갖 감정에 사로잡힌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 돈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다 뜬구름과 같으니 집착을 버리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몽둥이로 두들겨 팰지도 모른다.



  

  그대 중생에게 바로 이르노라.

 

  있지 않은 것이 곧 없지 않은 것이다.

 

  있지 않은 것과 없지 않은 것이 둘이 아니니

 

  어찌 있는 것에만 대하여 허망을 말하리오.

 

  있음과 없음은 허망한 마음으로 이름 붙인 것이니

 

  하나를 깨트림에 다른 하나도 없어짐이라.

 

  두 가지 이름이 그대의 생각으로 지어진 것이니

 

  생각이 없으면 본래 참되고 여여한 자리이니라.

 

  

 

강 설 

 

현상계는 모두가 상대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있음과 없음, 밤과 낮, 안과 밖, 남자와 여자, 동과 서, 남과 북, 오른쪽과 왼쪽, 노동자와 사용자, 진보와 보수 등 모두가 상대적이다. 

 

이렇게 이루어져 있는 현상을 

그대로 보고 이끌려 다녀야 하는 길이 있고 

그 모든 상대적인 것을 초월해서 

유유자적하는 길이 있다. 

 

대승적 삶의 길이란 아무래도 상대적 현상을 초월해서 유유자적해야 하리라. 모든 상대적 현상을 ‘있음과 없음’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 집약시켜 놓고 그것만 꿰뚫어 보는 안목이 있으면 모든 문제는 한꺼번에 다 해결이 된다.

 

‘있음과 없음이란 어디서부터 생긴 것인가? 

있음과 없음의 그 본질은 무엇인가? 

참으로 그렇게 엄연히 존재하는 것인가?’

라는 것에서부터 따져봐야 하리라. 

 

지공 화상은 

 

“있음과 없음은 허망한 마음으로 이름 붙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직지 강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