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매 순간이 극락

竹隱죽은 2020. 7. 21. 05:00

지금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의 삶

 

 

 

 

흔히 선사들은 ‘있는 그대로’ 또는 ‘지금, 여기에서 자기 직분에 충실’ 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산다는 것이 생각만큼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지금의 삶에서 과거를 생각하지 않고, 미래를 꿈꾸지 않으며, 지금 여기에서 무심의 경지로 ‘있는 그대로’ 산다는 것은 생각이 없는 바보이거나, 깨달아 도통한 사람이 아닌 경우 외에는 정말 어렵습니다. 

 

있는 그대로 산다는 것은 바로 

사물을 아무런 분별없이 또는 아무런 집착 없이 

무심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삶은 너무나 분별을 많이 하고 삽니다. 밉고, 예쁘고, 높고 낮고, 잘 살고 못 살고……. 어쩌면 우리네 삶을 지탱하는 것은 분별의 힘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인간의 삶은 힘들고 괴로운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그 분별을 분별이게 하는 것은 집착입니다. 그 집착으로 인해 우리네 삶 또한 괴롭고 힘듭 니다.

 

집착이라는 용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집착이란 잡을 집(執)에 붙을 착(着)을 써서 어떤 것에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네 삶을 가만히 보면 이 집착의 연속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집착하고, 공부에 집착하고, 대학에 집착하고, 취업에 집착하고, 애정에 집착하고, 돈에 집착하고, 명예에 집착하고, 건강에 집착하고, 삶에 집착하고……. 

 

결국 인간의 역사는 집착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 니다.

이런 집착의 삶을 훨훨 날려버리고, ‘지금 여기에서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산다면’ 그것이 바로 극락이며 해탈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이 쉽지, 보통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역량을 넘어서는 것들입니다. 밥 한 그릇 먹으면서 우리는 밥 한 그릇을 있는 그대로 먹지 못합니다. 밥 한 그릇 먹으면서도 우리는 수 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밥을 먹습니다. 돈 생각, 이성 생각, 누가 어떻다는 생각……, 하여간 있는 그대로의 밥맛을 즐기지 못합니다. 그것이 우리 중생들의 삶입니다. 

 

먹는 것 뿐 만 아니라, 사는 것이 거의 다 그렇습니다.

가끔 아이들은 왜 그렇게 게임을 좋아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은 게임하는 순간에 아무런 잡념이 들지 않고 게임과 자기가 일치되어 ‘있는 그대로 삶’을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게임 삼매에 빠져 주변에 어떤 일도 그 게임하는 마음을 방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즐겁게 삼매에 드는 것입니다. 축구 할 때도 그렇고,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 볼 때도 그렇고, 남녀가 사랑에 빠질 때도 그렇습니다. 



그 순간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기에 

열반이고 극락입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그때 뿐 입니다. 그렇게 재미있을 때만 ‘지금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지만 그 순간을 지나가면 여전히 온전하게 내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냥 의식적이던 무의적이든 온갖 번뇌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매순간 온전하게 ‘지금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는 사람은 

매 순간이 극락입니다. 

 

마치 게임 삼매에 빠진 아이들처럼 매 순간이 삼매인 것입니다. 먹으면 먹는 대로 삼매이고, 걸으면 걷고 있는 대로 삼매이며, 보고 있으면 보고 있는 대로 삼매입니다. 이러니 깨달은 사람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날마다 좋은 날’이란 바로 이것을 가르키는 말일 것입니다.

 

깨달은 사람도 인간인지라, 몸도 아프고, 가까운 사람과 사별을 하면 슬프기도 하고, 어떤 경계에 화나고, 서운하고, 외롭고, 그립고, 아프고,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중생의 번뇌의 마음이 드는 순간 곧바로 진여, 여래, 부처, 참 생명 등으로 불리는 지혜들로 전환하는 마음을 쓸 수 있기에 ‘날마다 좋은 날’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장애가 생겨도, 장애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텅 빈 허공 같이 맑습니다. 그 맑은 허공에 산이 오면 산을 비추고, 나무가 오면 나무를 비추고, 하늘이 오면 하늘을 비칩니다. 있는 그대로 비칠 따름입니다. 

 

인연 따라서 그렇게 비추지만 본래의 마음은 맑고 깨끗한 거울처럼 텅 비어 있습니다. 그 텅 빈 마음은 깨달은 사람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온갖 것들이 이렇게 그 본성은 맑고 깨끗하게 비어있는 것입니다. 그 빈 마음을 중생들은 찾지도 않기 때문에 모를 뿐입니다. 깨달은 사람은 그 본성에 비친 사물이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기에 ‘날마다 좋은 날’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이니,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지혜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설령 깨닫지 못할 지라도 ‘지금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실천 할 수 있다면 우리도 그들과 같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에도 얽매이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보는 것입니다. 

 

밥 먹을 때 온전하게 밥만 먹고, 영화 볼 때 온전하게 영화만 보며, 남이 이야기하면 온전하게 들어주고, 무엇을 할 때 온전하게 무엇인가를 하는, 그렇게 살아보자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도(道)입니다.

 

조주 스님이 남전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도(道)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도(道)란 평소의 마음 그대로가 곧 도이다.”

 

조주 스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평소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얻으려고 하면 곧 도에서 어긋난다.”

 

조주스님이 그 말을 듣고 다시 물었습니다.

“얻으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 도를 알겠습니까?”

 

그러자 남전 스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도(道)란 알고 모르는 것과 관계없다. 

 안다는 것은 망각일 뿐이고, 

 모른다고 하는것도 무기(無記)일 뿐이다. 

 만약 의심없이 도를 깨우치고 나면 

 그것은 허공처럼 확연하여 걸림이 없다. 

 그러니 어찌 그 도에 대하여 옳다, 그르다 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을 듣은 조주스님은 

곧 ‘평상심이 도’라는 도리를 깨우쳤다.

 

도를 닦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힘들어 닦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매 순간 자기 일에 충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번뇌를 여의고 일의 삼매에 드는 것이 도를 닦는 것입니다.

 

 

    흔들림 속에 고요함이 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