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自性)은 본래부터 완전하여 모자람이 없습니다.
물속에 있는 물고기가 물을 그리워한다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것은 천국이나 극락이라는 내세일 것입니다. 간혹 현실을 추구하는 종교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종교는 현실이라는 고통을 잘 감내하면 죽은 후의 내세는 좋은 곳에 갈 것이라는 보장성 보험 같은 것이 종교의 핵심 내용입니다. 기독교이나 이슬람은 천국, 불교는 극락, 서로 말만 다를 뿐이지 똑같은 내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내세가 진정으로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각자의 종교의 관점과 차이와 깊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천국이나 극락을 추구한다는 것은 너무나 교조주의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는 한, 좋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이나 극락을 추구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을 추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며, 되도록이면 선하게 또는 착하게 남을 돕고자 하는 행동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회는 풍성하고 아름답습니다.
내세를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국이나 극락이 영적으로 존재하는 이 우주 어느 공간쯤에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지옥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옥도 이 우주 어느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생각하며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신앙생활을 하거나, 불교 공부를 깊이 한 사람이라면 천국이나 극락은 영적으로 이 우주 어드메쯤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바로 여기가 이 세상이 극락이며 지옥입니다.
우리가 안심입명처인 본래면목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
우리는 이미 불성을 지닌 부처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아픔이나 괴로움을 먼 곳에서 치유하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여기가 천국이고 극락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천국이나 극락을 먼 곳에서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본래면목으로 돌아가면 열반이고 극락인데 본래면목으로 깨우칠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곳만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마치 물속의 물고기가 물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물속에 있는 물고기가 물속에 살면서 물을 그리워하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자기가 물속에 살고 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중이 마조에게 물었습니다.
“도(道)를 닦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조가 말했습니다.
“도는 닦는 것에 속하지 않는다. 만약 도를 닦아서 얻는다고 한다면 닦아서 이루어진 것은 다시 부서지니 곧 성문(聲聞)과 같으며 만약 닦지 않는다면 곧 범부와 같다.”
그 중이 다시 물었습니다.
“어떤 견해를 지어야 도에 통달할 수 있습니까?”
“자성(自性)은 본래부터 완전하여 모자람이 없다. 다만 선(善) 이니 악(惡)이니 하는 일에 막히지 않기만 하면 도를 닦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선에 머물고 악을 제거하며 공(空)을 관하고 선정(禪定)에 들어가는 등은 조작(造作)에 속한다. 다시 밖으로 치달려 구한다면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그러므로 삼계를 헤아리는 마음이 없도록 하여라. 한 생각 망령된 마음이 곧 삼계에서 나고 죽은 바탕이 되니, 다만 한 생각만 없다면 곧 생사의 근본을 없애는 것이며 이것이 법왕의 위없는 보물을 얻는 것이다.”
한 생각 마음먹기에 따라 극락이고 지옥입니다. 그러나 그 한 생각 마음먹은 번뇌마저도 보리입니다. 마조 스님이 말했듯, 자성(自性)은 본래부터 완전하여 모자람이 없습니다.
따로 번뇌를 버리고 보리를 얻는다는 것은 조작입니다.
우리는 선은 좋은 것이며 악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선을 추구하며 악을 버려야 천국이나 극락에 간다고 내세를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이라든가 악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만든 하나의 규범일 뿐, 법신의 입장에서 보면 다 같은 존재입니다. 모두 우리의 참자아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집착이나 혐오를 떨쳐내고 지혜를 꿰뚫어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지, 내세를 위해서 악을 버리고 선을 추구하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불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혜로서 꿰뚫어 깨달아야 합니다. 지혜로써 꿰뚫어 깨달아야 할 것은 아와 법이 존재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일입니다. 이런 고정 관념이 깨지고 업이 소멸되면 자연히 있는 그대로의 밝은 세상이 존재합니다. 그곳이 바로 천국이고 극락의 세계입니다.
이처럼 천국이나 극락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업이 소멸되면 자연히 드러나는 것이 천국과 극락의 세계입니다. 업의 소멸은 우리의 아뢰아식의 소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가설로 생긴 아(我)와 법의 소멸입니다. 원래부터 업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물속에 있는 물고기가 물을 그리워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흔들림 속에 고요함이 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