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흐르는 것이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시처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높다란 하늘과 철새들의 분주한 날갯짓들이 가을을 실감하게 합니다. 그런 가을하늘 속에서 지난봄과 뜨거웠던 지난여름을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눈꽃 같은 하얀 매화가 피기 시작하더니, 목련이 피고, 벗꽃이 피고, 철쭉이 피기 시작하면서 세상은 온통 꽃 잔치를 벌였던 봄. 그 봄은 열기 가득한 여름으로 이어지고, 어느 새 하늘은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는 세월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또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야합니다.
따뜻하고 훈훈한 봄바람처럼 좋고,
행복한 것은 영원히 붙잡아 두고 싶은데
그것들은 반드시 우리 곁을 떠나고,
그것 때문에 우리 인간은 괴롭습니다.
행복함과 젊음에 머물고 싶은데
훈훈한 봄바람 행복은 잠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난 여름처럼 뜨겁고 고통스런 순간들도
반드시 지나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혼식에 가면 신랑 신부가 늘 하는 약속이 있습니다. 주례가 신랑에게 “신랑은 영원히 신부를 사랑하겠는가? 또는 신부는 신랑을 영원히 사랑하겠는가?” 물으면 거의 모든 신랑 신부는 “예! 영원히 사랑 하겠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영원할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그중에는 한평생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한 평생 속에 얼마나 많은 미움과 번뇌와 장애가 있겠습니까?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물질과 정신의 본질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지금 현재 살아있는 생물들이 모두가 사라지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제가 생각하기에 현재 살아 숨 쉬는 생물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데에는 아마 100년이면 생물들의 99%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이 100살이 넘도록 살아있을지도 모를 극히 소수의 사람들과 100년을 넘게 산다는 거북이와 학 같은 생물들을 빼놓고는 모두 100년이면 모든 생물들이 이 지구상에서 존재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넉넉잡아서 50년이면 지구상 생물들의 반절이 없고, 25년이 지나면 1/4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그렇지, 생명이 짧은 다른 생명들의 기준으로 보면 50년이면 인간과 소수의 동물들을 빼면 거의 새롭게 바꿔있을 것입 니다.
100년이면 참 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짧다고 생각하면 정말 짧은 시간입니다. 가끔 TV를 보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 안타깝고 안쓰러운 시선으로 쳐다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 하면 인간들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가요? 10년 아니면 20년 조금 더 살뿐이지…….
얼마 전 제가 아는 지인 하나가 50대 중반의 나이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부인이 너무나 슬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남아서 우는 사람도 갑니다. 단지 먼저 가느냐, 늦게 가느냐의 차이일 뿐. 그럼에도 인간들은 먼저 가는 사람만 가고,
남아 있는 사람은 가지 않는 것처럼 착각하며 생활합니다.
힘들고 몸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도 지나갑니다. 아픈 상처에 염장을 지르는 듯한 고통도 지나갑니다. 누구의 말대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입니다.
산다는 것은 흐르는 것이다.
흐르는 것은 바라보는 것이다.
흐르는 것은 듣는 것이다.
흐르는 것은 느끼는 것이다.
흐름이 계곡을 흐르듯
목숨이 흐름되여
우리들의 살을 흐르는 것이다.
우리들의 뼈를 흐르는 것이다.
우리들이 그것을 깨닫는 것이다.
흐름이 계곡을 흐르듯
목숨이 흐름되어
우리들의 살을 노래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뼈를 우는 것이다.
우리들이 그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그것을 눈여겨 바라보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흐르는 것이다.
물의 흐름을 통해서 생의 의미를 담담하게 관조하고 있고 있는 박재륜 선생님 ‘천상에 서서’의 시를 보며, 논어에 ‘자한편’에 있는 구절로 선생님이 냇가에서 말씀하시기를
‘지나가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라, 밤낮 없이 멎지 않는다.’
모든 것은 흐르고, 흐를 뿐입니다.
흐르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주의 본질입니다.
제행무상을 깨달을 때 마음공부에 입문하는 것이며 불교공부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흐르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생길 때 담담하게 인생을 관조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흐르고, 흐를 뿐입니다.
그러나
좀 더 더 깊이 들어가면
흐르는 것도 없고 흐르지 않은 것도 없습니다.
일체가 인간이 만든 망상일 뿐입니다.
이 망상임을 깨닫는 것이
자유로움의 시작입니다.
흔들림 속에 고요함이 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