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진실
보이는 곳 너머
광활한
‘무’의 세계
‘무’에 대해 당나라 후기의 선승 황벽희운이 조주선사에게 물었을 때 조주선사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나 깨나 끊임없이 무라는 것에 대해 탐구해야 한다. 걸을 때나 쉴 때나 앉을 때나 누울 때나, 또는 옷 입을 때나 밥 먹을 때나 의자에 앉아서나 심지어 대소변을 눌 때에도 항상 이 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이 무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날이 가고 달이 거듭한 어느 날 홀연히 온 마음이 한 덩어리가 되면 갑자기 마음의 꽃이 활짝 피어나고 부처가 처음으로 깨친 바를 깊이 이해할 것이다. 이 깨달음은 한없이 단단하여 세상 그 어떤 노승의 입에 발린 말에도 속지 않을 것이며 활짝 열린 입에서 위대한 진리가 저절로 흘러나오게 될 것이다.
알고 보면 달마가 서쪽에서 왔다는 것도 바람 없는데 파도를 일으킨 것이오, 세존이 꽃을 들어 보이신 것도 오히려 한바탕 허물이라 할 것이라. 이런 경지에 이르면 염라대왕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모든 성인도 그대를 어쩌지 못한다. 이런 불가사의한 기적이 있으리라고 누가 믿겠는가?
그러나 마음과 정신을 집중한 사람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우리가 ‘무’라는 글자를 지킨다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무’의 사전적인 뜻은 ‘없다’다. 평범한 사람들이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분명히 있는 것을 어떻게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이 ‘부정법’은 일깨우는 효과가 있다.
무엇을 일깨울까?
우리가 진실한 세계라고 믿고 있는 것은 모두 십팔계 속의 갖가지 요소가 상호작용한 것이며, 이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바뀌면 우리가 진실하다고 믿고 있는 세계도 변한다는 사실이다.
“눈이 없다”는 관자재보살의 말은 우리를 한 가지 가설로 안내한다.
만약 눈, 코, 귀가 없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까? 이 가설은 또 우리를 무한한 체험으로 인도한다. 인간이 알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인간은 그저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있는 지극히 일부만 알 뿐이다.
이른바 ‘세계’라는 말은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세계일 뿐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또 다른 ‘존재’가 우리와 동시에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이 있음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우리가 있음을 알 수도 있고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전혀 그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무한하다.
이것이 가설이 아니라 우주의 진실임을 오늘날의 과학이 점점 증명해 내고 있다. 우주인들이 지구를 떠나 머나먼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았을 때 지구는 무엇과 같을까? 우리 한 사람의 몸보다도 더 작은 구슬 한 알처럼 보인다. 우주로 더 멀리 날아가 지구를 본다면 티끌 하나보다도 더 작을 것이고, 더 멀리 날아간다면 시간조차도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주인이 블랙홀 주위에서 며칠 유영하는 사이에 지구에서는 1천 년도 넘는 시간이 흐른다. 우주인이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시간 속에 완전히 응고되어 시간도 공간도 없게 된다. 블랙홀을 건너면 완전히 다른 우주로 가게 될 수도 있다. 2006년 과학자들은 화이트홀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화이트홀은 우주의 빅뱅 때 남은 치밀한 물질핵이다. 우리가 만약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 블랙홀을 건넌다면 다시 화이트홀로 연결되어 우주가 탄생하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에서 홉킨스에 이르는 과학자들이 과학적인 수단으로 증명해 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신앙을 가진 물리학자들은 모두 시간이 헛된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이 헛된 것에 얽매이고 패배당한다”라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또 종교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피력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험은 신비다. 신비스러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경탄할 수 없는 사람은 시체와 다를 바가 없으며 그의 눈은 어두운 것이다. 종교는 신비로운 경험에서 탄생한다. 종교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인식하고, 가장 심오한 이성과 가장 찬란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 자신이야말로 종교에 대한 감정이 가장 깊은 사람이다.”
반야심경의 “공 가운데는 색이 없다”는 말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가장 심오한 이성과 가장 찬란한 아름다움을 느껴야 한다고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신비스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시체와 다를 바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함을 알고,
가장 심오한 이성과 가장 찬란한 아름다움을 느껴라.
공 가운데 색이 없음을 깨달아라.
평생 걱정 없이 사는 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