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깨어남과 깨어남 이후

竹隱죽은 2020. 4. 20. 05:00

서슴없이 모든 것을 의심해보는 자세

 

  

 

나는 진리를 선언하는 식의 강의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진리를 말로 옮기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깨어남 이전에는 흔히 그런 식의 접근법을 택하게 된다. 즉 진리란 무엇이다, 하고 개념화해놓고서는 그 개념을 믿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어떤 신학이나 철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전략’으로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즉 깨어남을 얻기 위한 전략과, 깨어남 이후에 도움이 될 전략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모든 말은 하나의 포인터로 쓰이기 위한 것이다. 선가禪家에는 이런 말이 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달로 착각하지 말라.” 이 말을 수백 번 들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잘못을 거듭하고 있다. 앞으로 나는 많은 단어와 맥락과 비유를 동원하겠지만 여러분은 내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결국은 깨우쳐 이해되어야만 하는 내용이라는 걸 잊지 마시길 바란다. 

 

그 내용이 참된 것이 되려면 삶으로서 경험되어야 한다. 내 ‘이야기’는 결코 여러분 자신의 진면목을 알게 되는, 그 참되고도 직접적인 ‘경험’을 대신할 수가 없다. 여러분은 기꺼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스스로 물을 필요가 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이것을 나는 정말 알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다른 사람의 신념이나 의견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인가?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믿고 싶은가, 

혹은 무엇을 상상하고 싶은가?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이 한마디 의문은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 

 

여러분이 이 의문을 깊숙이 들여다볼 때, 이 의문은 실제로 여러분의 세계를 파괴할 것이다. 또한 여러분의 모든 자아관념을 파괴할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작용하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 스스로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여기던 모든 것, 세계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여기던 모든 것이 가정과 신념과 견해에 근거한 것일 뿐임을 알게 된다. 



그것들은 모두 여러분에게 진실이라 교육되고 길들여져서 스스로 믿어버리게 된 것들이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꿰뚫고 그 실상을 깨달을 때까지 우리의 개체의식은 계속 꿈속에 갇혀 있을 것이다.

 

‘이럴 수가,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거의 없군! ―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 나는 이 세계가 무엇인지 몰라. 나는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도 몰라.’ 



우리가 스스로 이렇게 인정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 안의 무언가가 열리게 된다. 

우리가 미지 속으로, 

그리고 미지의 속성인 불안 속으로 

기꺼이 발을 들여 놓고서 도피나 안락을 구해 

도망쳐 나오지 않을 때, 

그리고 다가오는 불길한 느낌에 

꿋꿋이 맞서서 머뭇거림이 없을 때, 

마침내 우리는 

 

자신의 진짜 얼굴을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파고 들어가는 작업은 깨어남 이후 더없이 소중한 도구가 된다. 이 질문을 스스로 해가는 것은 여러 제약과 개념, 그뿐 아니라 무언가를 고착시키려는 경향성(이 모두는 깨어남 이후에도 계속 존재한다)이 녹아 없어지는 데 도움을 준다. 

 

여러분이 영적 행로의 어디에 있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내면에서 서슴없이 일어서서 이 질문을 던지고 또한 자신이 발견한 것에 진지하게 열려 있으려는 자세이다. 그것이야말로, 

 

완전한 깨어남과 깨어남 이후의 완전한 삶이 걸려 있는 분수령이다.

 

 

     깨어남에서 깨달음까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