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인 고통
진짜 내 것이라면
잃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체의 무한함이란 무엇이고, 세상 밖이란 또 무엇일까? 너무 추상적이지 않은가?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당장 실연하거나 직장을 잃거나 파산한 사람에게 전체의 무한함이 무슨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세상 밖으로 어떻게 나가란 말인가?
우리에겐 세상 밖으로 데려다주는 차도 없고 세상 밖으로 나갈 날개는 더더욱 없다. 훌쩍 떠나 바닷가에 가서 바람을 쐬고 오는 것조차 쉽지 않다. 세상의 바깥이나 무한한 집으로 돌아가라는 부처의 가르침이 순간의 고통을 잊게 해 줄 수는 있지만, 세상의 근본적인 고통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부처는 급한 대로 타조처럼 머리만 처박아 고통을 잊게 만드는 전략을 썼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부질없으며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다독였다.
하지만 실연당하고, 파산하고, 배가 고프고, 병에 걸려 아프고, 집에 돌아갈 여비가 없는데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있을까? 어떻게 뜬구름 같은 무한함에 의지해 당장의 현실적인 고통을 잊을 수가 있을까?
좋다. 그러면 현실적인 얘기로 돌아와 보자. 무한함이니 전체이니 하는 얘기는 밀어 놓고 바로 지금 현실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얘기해 보자.
당신은 지금 실연했다. 아무리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아도 무한함을 깨닫기는커녕 당신을 버리고 떠난 애인의 얼굴만 하늘에 덩그러니 떠 있다.
매 순간 가슴이 저리고 욱신거린다.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앉아서 《법화경》을 읽어 보려 하지만 떠난 애인의 얼굴이 글자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아무리 부처라도 당신의 고통을 해결해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애인을 잃은 고통을 오롯이 받아들여 보자.
눈앞에 떠오른 그 얼굴을 똑바로 보자.
외면하지 말고 똑똑히 들여다보고 찬찬히 뜯어보며
자신을 온전히 괴로움에 내맡기자.
반드시 고통을 외면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만약 당신이 지금 파산했다면, 아무리 간절하게 기도해도 부처는 당신의 새 출발에 필요한 돈을 내어주지 않는다. 아무리 내세와 무한함을 상상해도 당신이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하고 행복했던 과거를 떠올려 보아도 당신은 별 도리 없이 주위의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밤하늘이 아무리 광활해도 당신은 여전히 어떻게 하면 재기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 이건 현실이다.
조용히 앉아서 이치를 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자신에게 찾아온 괴로움과 불안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
한편으로는 바로 지금이 멈출 수 있는 때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오랫동안 연애와 일 때문에 바빴던 생활을 잠시 멈출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차분히 앉아서 생각해 보자.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그 어떤 일도 당신을 방해하지 않는다. 혼자 멈추어 서서 가만히 생각해 보자. 이미 떠난 사람이 당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었나? 파산한 사업이 당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이었나?
만약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면, 설령 끝내지 않고 계속 유지했더라도 그것은 당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언제가 되었든 상실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상실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면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애인이나 사업을 놓지 못하고 발버둥 친다면 당신은 아버지를 떠나 타지를 떠돌며 날품팔이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아들과 다를 바가 없다.
멈추어 서서 집 떠난 아들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그의 아버지는 부유했다. 그건 태어날 때부터 그에게 주어진, 그 자신의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것을 포기하고 떠난 뒤 불타는 집으로 들어가 동분서주하며 재물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결국 안락한 삶을 얻지 못한 채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멈추어 서서 생각해 보자. 설사 당신이 속세를 떠나 출가하지 않더라도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그 떠돌이처럼 살지는 말아야 한다. 한평생 당신 것도 아닌 것을 좇으며 살 것인가? 당신의 집은 황폐한 사막이 되도록 내버려 둔 채로 말이다. 당신의 집은 원래 나무가 울창하고 온갖 꽃이 시새워 피어나며 푸른 풀이 햇볕을 받고 이슬을 머금어 자라는 곳이었다.
실연과 파산은 슬픈 일이지만 두려운 일은 아니다.
당신은 여전히 살아 있고,
당신의 육신과 영혼은 건재하다.
생각해 보라.
애인이 떠나고 재산이 사라졌다.
애초 그건 당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원래 당신 것이 아니었으므로 잃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멈추어 서서 가만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정말로 당신 것이었다면 떠나지도 않고 잃어버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서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는 건
바로 당신 자신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세상의 득실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애인이 떠나고 재산이 사라졌다면
애초 당신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원래 당신 것이 아니었으므로
잃어도 상관없다.
법화경 마음 공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