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무명이 도의 바탕

竹隱죽은 2020. 4. 4. 05:00

무명이 도의 바탕이 된다.

 

 

지(智)는 흐리고 관조(照)는 밝으며,

혜(慧)는 맑고, 식(識)은 탁하다.

부처로 말하자면 관조하는 지혜[照慧]라고 하며,

보살이면 지(智)라 하고,

이승과 중생 쪽으로 치면 식(識) 또는 번뇌라고 한다.

 

부처의 경지에서 본다면 

지(智) 역시 방편이고

조용히 관하여 스스로 밝히는 관조(觀照)가 좋다. 

혜(慧)는 맑다고 하는 것은 관조하여

스스로 일어나는 반야지혜가 맑다고 하신 것이고,

중생심의 식(識) 즉 알음알이는 탁하다고 하셨다. 

 

부처의 경계로 말하면 

관조하는 지혜가 수승하다고 하고 

이것을 보살의 경지로 보면 오직 지(智)라고 하여 

무위적 방편을 베푸는 것임으로 지혜작용이라 하고, 

 

중생 쪽에서 보면 

이것은 또한 번뇌를 바탕으로 망상을 짓는 것이 됨으로 

번뇌망상이라고 할뿐, 

모든 것은 상대적 개념에서 하고 있는 말임을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반야지혜, 번뇌망상이라는 것 역시 허명임을 알아차린다면 

역시 본래지를 투득하는데 일조할 것이다.

 

다시 상대법을 들어 설법을 이어가신다.

 

부처라는 결과 속에는 중생이라는 원인이 들어 있고 

중생 원인 속에도 부처라는 결과가 들어 있다.

 

부처라는 것은 스스로 중생이라고 하고, 

중생이라는 그 개념을 벗어나 

어떤 세계로 갈려는 욕심이 불러온 이름이 

바로 부처라는 허명이 되는 것임으로, 

부처라고 하나 중생이라고 하나 

 

이것은 원래 없는 차별인 대법을 세워 만들어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불이불(衆不異佛)이요 

불불이중(佛不異衆)이며 불즉시중(佛卽是衆)이요 

중즉시불(衆卽是佛)이다. 

불타명즉 시중생명(佛陀名卽 是衆生名)이요, 

중생명즉 시불타명(衆生名卽 是佛陀名)이라. 

시고(是故)로 불타부중(佛陀部衆)이라 하노라. 

 

중생이 부처와 다르지 아니하고, 

부처가 중생과 다르지 아니하니, 부처가 바로 중생이요. 

중생이 바로 부처인 것이다. 

붓다의 이름이 곧 중생이름이요, 

중생의 이름이 곧 붓다이름이라. 

그러므로 불타의 무리라 하노라. 사바하!




무시이래 저허공은 형상마저 없었는데

태허같은 허공에다 점을찍고 선을그어

부처세계  뭇중생을 속였구나

 

운문선사 이를두고 원통하고 분하구나

석존시에 나있으면 태어날때 때려죽여

개를주고 말았으면 세상만사 편할것을

 

이제와서 그말뜻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허허로운 심법계는 구름한점 없음이라

찾는마음 내려놓면 그대로가 허공이리

 

여보시요 시주님아 찾는마음 내려놓고

구하는맘 내리시게 그마음만 벗어나면

지금여기 이대로가 화장세계 이아닌가

 

극락정토 따로없고 사바세계 따로없다

차별하고 분별하는 그맘속의 일이라네

영상처럼 그려놓은 그대로가 꿈이로다

 

꿈속이라 살펴보면 이대로가 현실이고

현실이라 살펴보면 이대로가 꿈속이라

꿈속에서 꿈을꾸니 이아니도 좋을손가

 

이내마음 이대로가 부처마음 인줄알면

있는대로 다누리고 있는대로 쓰고펼쳐

화장세계 온누리가 그대로가 정토일세

나무 영산회상 불보살!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질 뿐이지.

무엇이든 설하면 다 법이 되는 것이고,

그 법이 악법이든 선법이든 일심법이든 불이법(不二法)이던,

다 그 근본 뜻과 형상은 동일하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그래서 부처라는 중생의 반대적 개념에서 바라보았을 뿐 

 

“부처에게 있어서는 본지무명(本地無明)이라 하는데, 

 이는 무명의 밝음[無明明]이다.” 하셨다. 

 

이 말씀은 원인과 결과인 인연법에서 보면

이것이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 과보를 결과라고 하지만

원인이 곧 결과이고 결과가 바로 원인인 것을 들어

무명이 바로 어둠의 차별상이요

밝음이 바로 어두움의 차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명이 도의 바탕이 된다’ 하였으니, 

어둡게 가리운 중생의 무명과는 다르다.

 

무명이라고 한 생각을 내니 

바로 밝음을 찾게 되고, 

찾게 됨으로 밝음을 찾아 내여 밝음을 쓰는 것이지 

원래 밝음이 좋다, 어둠이 좋다 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어둠은 밝음에 대법이요, 

밝음은 역시 어둠의 대법에서 하는 말일 뿐이며,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가 완전한 진상이요, 

실상인 것이며 이름이며 형상인 것이다.

옴!

 

 

      백장록 강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