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소리없는 소리

竹隱죽은 2020. 3. 23. 05:00

소리 없는 소리
 

어느 중이 물었다.

“공부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종림에 들어왔으니
스님께서 나아갈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종일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밖에 흐르고 있는 시냇물 소리를 듣고 있는가?”

“예, 듣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네가 나아갈 길이다.”
 
스승을 찾아와서 
공부하여 깨치는 길을 가르쳐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그 스승의 대답은 시냇물 소리를 듣는 데 길이 있다고 한다.

깨치는 길, 견성의 길은
우리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 
견성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관세음보살처럼 듣는 것을 따라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한다.

능엄경에서 문수보살은
관세음보살처럼 듣는 성품을 보라고 권한다.

“대중들이여, 그리고 아난다여,
그대들의 잘못 듣는 기틀을 돌려라.
듣는 놈을 되돌려 자기의 성품을 들으라.
그 성품이 위없는 도를 이루나니
원통(圓通)이란 실로 이와 같아야 하느니라.”

이 생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소리가 나면 그 소리를 쫓아 듣고
볼거리가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쫓아 본다.
우리는 외계의 대상을 따라 보고, 듣고, 냄새 맡는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하는 경험이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이 외계의 사물을 따라다니면
견성하고 깨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마음을 
내면으로 되돌려 
보고 듣고 하는 우리의 마음을 관하여 그 실체를 파악하여야 한다.

시냇물 소리를 들으라는 것은
하루 종일 앉아서 그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 아니라
시냇물 소리를 듣는 자기의 듣는 성품을 들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소리 없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聽無聲
 
뜰 앞의 까마귀가 울자
어떤 이가 선사에게 물었다.

“까마귀 소리를 들었습니까?”

“들었소.”

이윽고 까마귀가 날아가 버리자
그는 다시 물었다.
“들으십니까?”

“듣고 있소.”

“까마귀가 날아가서 소리가 나지 않거늘 어찌하여 듣는다 하십니까?”

“나는 들음 없이 들어서 소리에 매이지 않는다.
듣는 성품은 소리를 따라서 나(生)거나 소리를 따라 멸(滅) 하지 않는다.”

들음 없이 듣는 것이 바로 우리의 듣는 성품을 듣는 것이요
그것이 듣는 마음을 따라 마음의 근원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하꾸인 선사는
‘한 손으로 치는 손뼉 소리는 무엇인가?’ 하며
소리 없는 소리를 들으라고 암시하고 있다.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 
자기의 본 성품을 보게 되면
그때 비로소 
그는 시냇물 소리를
다만 시냇물 소리로 들을 수 있다.

흰 구름 한가히
산마루 지나고 가까이 들리는
시냇물 소리.

 마음 - 황명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