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허무한 공(空)

竹隱죽은 2020. 2. 23. 05:00

아무것도 남지 않는 부정



 

  만법공적萬法空寂의 물결이 일고

 

  진여眞如의 언덕으로 몰리어 간다.

 

 

만법이란 일체의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일체의 존재가 공(空)이라는 제1차의 부정이 

 

‘공적(空寂)’입니다.

 

만약에 모든 것을 허무한 것, 즉 공(空)으로 부정해 버리면 그것은 허무로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허무주의자(虛無主義者 Nihilism)로 불리는 사람들은 제1차의 부정에서 그쳐버리고 말기 때문에 모든 것이 헛되고 공허하게만 느껴져서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렌즈에 비유한다면 단지 한 개의 볼록렌즈만으로 외계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착각이 아니라 거꾸로 된 인식, 즉 뒤집어서 엎어놓은 인식이므로 도각(倒覺)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부정은, 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작은 사색을 말살하는 것입니다.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이 렌즈를 한 번 통과해야 합니다. 

 

여기에 머물러서 그대로 만족하고 있으면 제로, 즉 영(0)의 세계밖에는 보지 못합니다. 

여기서 다시 또 하나의 볼록렌즈를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2차 부정입니다. 

 

거꾸로 보이던 모습이 다시 반전해서 본래의 모습이 됩니다.

 

모습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으나,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볼록렌즈를 통해서 나타나는 모습이기 때문에 분명히 같은 모습이지만 같은 모습이 아닌, 먼 곳을 포괄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부정한 것을 다시 부정하는, 부정의 부정은 결국 보다 높은 차원의 긍정이 됩니다.

 

 

제1차의 부정에서 

자기중심의 생각, 

즉 나만의 집착을 부정했지만 



이 부정하는 것 그 자체를 또 부정하지 않으면 부정에 사로잡혀서 공(空)의 본래의 성질을 배반하게 됩니다.

 

모든 있는 것, 즉 존재를 허무한 것으로써 부정하고 이러한 자신까지도 공(空)으로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허무한 공(空)이라 하여 부정되었던 공(空)도 실은 공(空)이라고 하게 되었을 때, 



거기에는 이제 다시 부정되어야 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부정의 부정인 까닭에 이것을 ‘절대부정’이라고 합니다. 

 

절대부정의 결과는 자신을 비롯한 모든 존재가, 이제 그대로의 참된 존재로서 마음의 화면 가득히 부활해서 살아나오는 것입니다.

 

반야의 지혜는 이와 같은 구조로 더욱 노력함으로써 다시 얻어지고 또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 누구라도 긴 시간을 두고 열심히 노력해야 알게 되는 내용을 반야(般若)라는 단 두 글자로 포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경전의 이름이 얼마나 큰 중량과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앞의 시에서, 이 반야사상을 ‘만법공적의 물결이 일고’라 하여 공적의 고요함마저도 ‘물결이 일고’라는 말로 부정해서 공적에 머물러 있는 것을 물리치고 경계하는 자세는 표현 능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공(空)의 사상을 잘 이해하고 체득해서 그것을 확신하고 있는 신념의 경지에서만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표현이므로, 

 

그와 같은 마음의 경지가 얼마나 뛰어나게 훌륭한 것인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공적의 물결이 잇달아 

‘진여(진리)의 언덕으로 몰리어 간다’고 노래한 진여의 언덕은 경전 제목의 ‘바라밀다’를 말하는 것이며 

 

동시에 경전 본문의 끝 부분에 나오는 ‘주(呪)-진언(眞言)’까지 지향하고 있습니다.

 

   반야심경 - 송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