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본질
상식은 반드시 옳은가
우리는 상식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 중에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많고, 상식이 오히려 우리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한번은 우두종의 혜충선사가 제자들에게 아주 당연하게 들리는 질문을 했다.
“성 밖 풀이 무슨 색이냐?”
한 제자가 대답했다.
“노란색입니다.”
혜충선사가 어린아이를 불러다가 똑같이 질문하자 어린아이가 “노란색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혜충선사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의 식견이 어찌 어린아이의 것을 넘지 못하느냐?”
“그럼 성 밖 풀이 무슨 색입니까?”
“하늘의 새를 보았느냐?”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앞으로 가거라!”
제자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앞으로 걸어가자 혜충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돌아가고 다음에 다시 오거라.”
다음 날 제자들이 또 찾아와 어제의 문답을 설명해 달라고 하자 혜충이 말했다.
“스스로 깨달아야 하느니라.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설명해 주어도 깨달을 수 없다.”
혜충은 제자들이 상식을 초월해 더 넓고 깊은 본질을 볼 수 있도록 일깨워 주려고 했던 것이다.
성 밖 풀은 물론 노란색이다. 하지만 봄에는 무슨 색일까? 하늘 위 새는 날아가면서 어떤 흔적을 남길까?
깊이 생각해 보면 사물의 본질은 모두 ‘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풀에 관한 또 다른 일화가 있다. 하루는 경저선사를 찾아간 동산선사의 제자에게 경저선사가 물었다.
“동산선사께서 그대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내리셨는가?”
“하안거가 끝난 뒤 저희에게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동쪽이든 서쪽이든 사방 만리에 풀이 없는 곳으로 수행을 떠나라 하시고는 저희에게
‘사방 만리에 풀이 없는 곳은 어떻게 가는가?’ 하고 물으셨습니다.”
“누가 대답했는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문을 나서면 모두 풀’이라고 대답하지 못했느냐?”
경저선사의 이 말은
밖에서 진리를 추구하려고 하면
곳곳이 잡초 덤불이지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자기 안에서 구한다면
문턱이 사라지고 한 발만 나가도 사방 만리에 풀이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동쪽이든 서쪽이든 멀리 떠날 필요가 있을까?
밖에서 진리를 추구하려고 하면
곳곳이 잡초 덤불이지만
자기 안에서 구한다면
한 발만 나가도 풀이 없는 곳이다.
불안하지 않게 사는 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