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자유로운 마음

竹隱죽은 2020. 2. 5. 05:00

생각에 끌려다니지 말라

   

 

어릴 때는 높은 창틀에 걸터앉아 발밑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런데 자라서 어른이 된 후에는 창틀에 올라가지 않는다. 이제 무서움을 아는 나이가 되어 발밑을 내려다보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세상 많은 일들이 이렇다. 우리가 규칙을 배우고 이것저것 구분하기 시작하면 예전처럼 잘하지 못하고 번뇌가 시작된다.

 

매일 엎드려서 자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떤 자세로 자야 잠을 푹 잘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그에게 맞는 수면 자세가 따로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날부터 그는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이 들었다가도 몸을 왼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오른쪽으로 돌려야 하는지, 오른손을 위에 놓아야 하는지 아래 놓아야 하는지 신경 쓰여 잠이 깨어 버렸기 때문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자 수면 부족으로 항상 피곤했다.

 

어느 날 그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엎드려서 잠을 청했더니 금세 잠이 들어 한 번도 깨지 않고 다음 날 아침 개운하게 일어났다.

 

좌선을 이야기해 보자. 어떤 자세로 앉음으로써 본래 깨끗한 자기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딘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가?

 

혜능이 자기 본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았는가? 본래 깨끗한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그렇다. 혜능은 자기 마음으로 돌아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선의 목표라고 했다. 그런데 혜능은 이것을 목표로 삼으면 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고 했다. 

 

좌선할 때 의도적으로 자기 마음으로 돌아가 마음을 깨끗이 하려고 하면 그 생각에 얽매이게 되어 그것이 또 번뇌가 되기 때문이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화나거나 흥분되는 일을 떠올리면 더 잠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빨리 자야 한다는 사실에만 집중해도 마찬가지로 잠드는 데 실패할 확률이 높다. 



효과 있는 방법은 

억지로 잠을 청하지 말고 자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 목표가 없는 상태로 생명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마음을 맡겨야 한다. 

 

잠이 와도 좋고 잠이 오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으로 

그 순간에 충실하며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때 자기도 모르게 잠들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초월이다. 혜능은 모든 ‘헛된 마음’을 떨쳐 내는 것이 궁극적 해탈의 길이라고 했다. 

 

‘헛된 마음’이란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는 마음 또는 무엇을 판단하는 마음이다. 

 

어떤 목표를 추구하든, 어떻게 판단하려고 하든 모두 부처가 되는 길에 걸림돌이 된다. 깨끗함을 추구하면 깨끗함의 노예가 되고, 마음을 쫒으면 마음의 노예가 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돈의 노예가 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혜능은 좌선을 이렇게 해석했다.

 

“걸리고 막힘이 없으며 

그 어떤 현상도 헛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좌’라고 하고, 

자기 본성으로 돌아가 흔들림이 없는 것을 ‘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좌선이 ‘앉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앉든 앉지 않든 아무런 관계가 없다. 

 

중요한 것은 외부 일과 사물에 자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마음이 자유로우면 

매 순간 분별심이 일어나지 않고 

생명이 꽃처럼 활짝 피어나 마음껏 자라난다.

 

   

  자고 싶다면 자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잊으라.

 

  아무 목표가 없는 상태로

 

  생명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마음을 맡겨야

 

  비로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불안하지 않게 사는 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