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증득하는 것은

竹隱죽은 2019. 12. 7. 05:27

 

이 몸을 끌고 다니는 것

 

 

도를 닦는 사람은 무엇으로써 증득합니까?

 

마지막에 증득하는 것으로 증득하는 것을 삼는다.

 

 

어떤 것이 증득함이 없음이며, 어떤 것이 증득함이 없음도 없는 것입니까?

 

밖으로 색과 소리 등에 물들지 아니하고, 안으로는 망령된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하니 이와 같이 얻음을 이름하여 증득이라고 한다. 증득하였을 때 증득하였다는 생각을 갖지 않음을 이름하며 무증이라고 한다. 이 증득함이 없음을 얻었을 때 또한 증득함이 없다는 생각을 짓지 않음을 이름하여 증득함이 없음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問 修道者 以何爲證

 

答 畢竟證爲證

 

問 云何是無證 云何是無無證

 

答 於外 不染色聲等 於內 不起妄念心

得如是者 卽名爲證 得證之時

不得作證想 卽名無證也 得此無證之時

亦不得作無證想 是名無證

卽名無無證也

 

 

증득證得하는 것은 실제로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딴 사람, 그 자리를 확실히 실력을 갖추어서 완전히 통달한 사람을 증득했다고 합니다.

 

참선공부해서 자기의 존재를 확연히 알았다는 것을 증득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치로, 상식으로, 논리로, 지식으로 안 것은 의리선이라고 합니다. 사량분별을 해서 알게 된 것은 선은 선이지만 의리선입니다.

 

의리선은 이 문중에서는 인정을 안 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병통이라고 하고 이렇게 안 것은 해오解悟라고 합니다.

 

오히려 그런 것이 싹 없어져서 전혀 몰라야 아주 철저하게 꿰뚫어서 나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게 되는데 그렇게 안 사람을 증득했다고 합니다.

 

 

“증한 것도 없고, 증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도 없음을 이름해서 필경에 증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없다’고 하는 것도 일중관, 즉 하나의 관문에 걸렸다고 합니다. 새가 아침에 나올 때는 날이 청명하니 좋았지만 저녁에 돌아올 때는 안개가 자욱하니 덮여서 자기 집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없다고 부정하면, 없다고 부정한 것 하나가 마치 안개처럼 산을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에 뭐가 없다고 하는 것이 있으면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없다고 하는 것조차도 없다고 쓸어버렸을 때에 비로소 그것을 증득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밖으로 색성에 물들지 아니한다’는 것은 도인이 되어야 되지 말로는 안 됩니다. 차타고 가면서 아가씨들 다리만 허옇게 나와도 그거 쳐다보느라고 정신이 없고, 지나가다가 남녀 둘이 앉아서 이야기만 하고 있어도 그걸 보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각설이타령을 하는데 나도 가서 보니까 사람들이 거기에 빠져 정신이 없습니다.

 

그저 이런저런 이야기 온갖 잡된 이야기하면서도, 일생 동안 살면서 한 번도 이 본분소식을 가지고 논하는 일이 없습니다. 전부 다 바깥 색 경계에 빠져서 나라는 존재를 잊어버립니다. 그런 곳에 따라가면 자기의 순수이성을 잃어버린다는 소리입니다.

 

밖으로 색성에 물들지 아니한다는 것은 모양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며, 또 빠졌으되 천 가지 만 가지 파도가 일어나고 태풍이 일고 세상이 어렵다고 싸움을 하고, 피가 나고 전쟁이 나는 속에서도 조금도 불안하지 않고 편안하다는 소리입니다.

 

그런 속에 들어가서도 공포심도 두려움도 없고 불안한 것 없이 편안할 수 있는 그 마음을 굴리는 사람은 어디고 걸리지 않고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그렇게 안 되고 바깥의 경계에 끌려갑니다. 그러니까 30년 화두 들고 선방에 다녀도, 선방에서 한 철 공부하고 해제만 하면 걸망지고 돌아다니면서 온갖 데 보는 대로 빠져가지고 화두는 뒷전이 되고 또 결제가 되어서 죽비 딱딱 치면 앉아 있다가 방선하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고 화두는 어디로 갔는가 없고, 그러면 이 일을 해 마치기가 힘듭니다.

 

 

흐름 속에서 흐름을 따라가는 이놈,

흘러가는 것을 보는 이놈,

바깥의 경계를 보는 이놈,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는 이놈,

 

 

그놈이 무엇인지를 빨리 되잡아서 공부해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 들어가는 사람은 흐름을 따르되 불매不昧라, 매昧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매하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이고 매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 떨어진다, 속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모르니까 그놈을 돌이켜 잡아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한 생각이 나왔을 때, 한 생각은 잘 나오지만 한 생각이 나오기 이전으로 돌아올 줄은 모릅니다. 퍼뜩 보는 순간에 두드려 잡으라고 했습니다.

 

 

 

두드려 잡을 줄 아는 사람은 놓치지 않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잃지 않고 항상 여여합니다.

 

 

 

물이 한번 고이면 썩듯이 어느 한 곳에 따라가서 머물러 버리면 나라는 존재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밝은 성명性命 자리를 잊어버리고 거기에 속아서 헤맵니다. 물체나 바깥 경계에 속아 거기 머물러서 이러니, 저러니 하고 분별하고 별짓 다 하면서 나라는 존재는 잊고 거기에서 끝나고 맙니다.

 

순수이성, 밝은 성품 진성 자리를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퍼뜩 보는 순간 이놈을 얼른 돌이켜서 한번 뭣인가 보라는 것입니다.

 

  

   대주선사어록 강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