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양변을 뛰어난 자

竹隱죽은 2019. 12. 5. 05:23

 

활발발한 안목

 

 

 

어떤 것이 해탈심입니까?

 

 

 

해탈하는 마음이 없으며, 또한 해탈심이 없다는 것도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참해탈이라고 한다.

 

경에 이르되 “법도 응당히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은 어찌 말할 것이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법이라는 것은 있음이며, 비법이란 없음이다. 다만 있음과 없음을 취하지 아니하는 것 그것이 참해탈이다.

 


云何解脫心

 

無解脫心 亦無無解脫心 卽名眞解脫也

經云 法尙應捨 何況非法也 法者是有

非法是無也 但不取有無 卽眞解脫


좋고 나쁘고, 괴롭고 편안하고, 더럽고 깨끗하다고 하는 두 가지 양변에서 벗어난 사람의 마음, 즉 해탈심解脫心에 대한 물음에 “해탈하는 마음이 없으며, 또한 해탈심이 없다는 것도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참 해탈이라고 한다.”라고 대주 선사가 답합니다.

 

일단 ‘없다’고 부정해 버렸습니다. 일어나는 것을 단번에 죽여 놓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해탈하는 마음이 없다. 참해탈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즉시 벗어난 사람을 말하는데 자신이 이렇게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바로 알아듣고 자기 자신이 척 하니 해탈한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이 세상에 법이라는 것이 올바로 하라, 살생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음행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사회에도 법이 있고, 이 세상의 천태만상이 그대로 진리의 법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진리의 법인데, 바깥 색경계에 빠져서 물들지 말고 네 마음을 잘 닦아라 하는 것입니다.

 

삼계는 모두 마음이요 만법은 유식이라, 일체 유정 무정이 모두 의식이라는 그런 것이 다 법입니다. 유가에는 유가의 법이 있고 불가에는 불가의 법이 있고 다른 종교에는 그 종교의 법이 있고 가정에는 가정의 법이 있고, 이 세상이 다 법입니다.

 

“법이라는 것을 버렸거늘, 하물며 법 아닌 그릇된 법은 더 말할 것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있고 없는 양변이 있습니다. 두 가지 양변을 싹 쓸어버린 사람은 참으로 뛰어난 사람입니다. 조주 스님 같은 이는 척 하니 해냈습니다. 신발 두 짝을 머리에 이고 말없이 턱 하니 돌아나갔는데 그게 무슨 소식이겠습니까? 이런 양변에서 걸려 있을 때 자기의 안목이 나와야 됩니다.

 

덕산 스님이 방에 있는데 암두 스님이 가서 문을 열고, 문지방의 턱 안쪽에 한 발을 내딛고 한 발은 밖에 두고 서서 덕산 스님한테 묻습니다.

 

“내가 범부냐, 성인이냐?”

 

이거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럴 때에 여기서 뛰어나는 사람은 사자새끼라 하고 부처님의 아들이라 하고,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범부정령이라, 컴컴한 중생의 의식을 가지고 산다는 것입니다. 중생의 의식을 가지고는 그것이 해결이 안 되지만 덕산 스님은 전광석화와 같이 나왔습니다.

 

덕산 스님이 한마디 전광석화와 같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암두 스님이 들어가서 절을 했습니다.

 

후에 동산 선사가 말하기를

“정말로 암두전활巖頭全豁상좌가 아니면 덕산의 할을 알아듣기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암두 스님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동산 늙은이가 좋고 나쁜 것도 가려볼 줄 모르면서 함부로 그런 소리를 하느냐.”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덕산 스님이 천하의 선지식으로 불리는 위산 스님을 찾아가서 절이며 선방으로 한 바퀴 빙 돌며 살피고는 가버렸습니다. 위산 스님한테 인사라도 해야 될 텐데 왜 그렇게 갔겠어요?

 

나가다가 “이거 너무 간단하지 않나. 내가 이걸로 끝낼 것이 아니라 한 번쯤 좀 더 가까이 가서 시도해서 점검을 해보자.” 하고는 위산 스님 있는 방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방석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위산 스님이 얼른 불자를 들려고 해서 “악” 소리를 지르며 방석을 대던지고는 나가버렸습니다.

 

위산 스님이 그랬습니다.

“오늘 온 수좌는 큰 상상봉 봉우리에서 천하를 호령하는 선지식일 것이다.”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것을 여러분이 볼 때는 그냥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거기에는 벌써 보이지 않는 속에 여러 차례 칼이 오고가고 한 것입니다.

 

간파를 다 해버린 것입니다. 간파를 다 했기 때문에 그런 태도가 나오는 것이지, 간파를 못하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살면서 그냥 뜻 없이 사는 것보다는 인생에 대한 자기 존재의 가치가 뭔가를 확실히 알면서 살라는 말입니다.

 

이런 양변을 뛰어난 자

그 사람이 해탈한 사람입니다

 

대주선사어록 강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