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마음은 본래 공하다

竹隱죽은 2019. 10. 30. 05:29

 

선덕(先德)께서,

 

“깨치지 못한 사람은

문자에서 깨달음을 구하지만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서 깨치며,

깨치지 못한 사람은

인(因)을 닦고서 과(果)를 기다리지만

 

깨달은 사람은

마음이 본래 공함을 깨친다”라고 하셨다.

 

 

先德이 云

 

“迷人은 向文字中求悟어늘 悟人은 向自心而覺하며

迷人은 修因待果이어늘

 

悟人은 了心本空이라” 하시니라.

 

 

 

통발과 올가미는 물고기와 토끼가 아니며,

술지게미는 본래 맛이 아니구나.

 

筌蹄 不是魚兎

糟粕 不是本味

 

 

 

조사께서,

“천 가지 경전과 만 가지 논(論)이 본래의

진심을 지키는 것보다 못하다”라고 하셨다.

 

祖師 云

“千經萬論 莫過守本眞心"

 

 

 

배움이 도에 이르지 않았는데도

보고 들은 것을 자랑하고 뽐내며,

한갓 입에 발린 교묘한 말로 서로 이기려고 하는 것은,

마치 뒷간에 단청을 하는 것과 같다.

 

學未至於道하여서 衒耀 見聞하여 徒以口舌辯利로

相勝者는 如厠屋에 塗丹雘이니라.

 

 

 

말세의 어리석은 공부에 대하여 특별히 밝힌 것이다.

공부란 본래 자신의 성품을 닦는 것인데,

오로지 남에게 보이기 위해 한다면

이는 참으로 무슨 마음인가?

 

別明末世愚學이라 學本修性이어늘 全習爲人하니

是誠何心哉아?

 

 

 

공부는 본래 본성을 닦는 것이니

어찌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낼 것이며,

도는 본래 삶을 온전히 하는 것이니

어찌 세상에 쓰임을 바라겠는가?

 

學本修性이라 豈慍人之不知며 道本全生이라.

何蘄世之爲用이리오?

 

 

 

출가한 사람이 불교 이외의 책[外典]을 공부하는 것은

마치 보배로운 칼로 진흙을 베는 것과 같다.

진흙은 쓸데도 없는데 내 칼만 상하게 된다.

 

出家人이 習外典함은 如以刀로 割泥이니 泥無所用이요,

而刀自傷焉이니라.

 

경전(經典)에,

 

“덧없는 불이 온 세상을 살라버린다”라 하고

또, “중생의 괴로움의 불이 사면(四面)에서 함께 타고 있다”,

 

“모든 번뇌의 도적이 항상 사람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수도인은 마땅히 스스로 깨쳐

마치 머리에 타고 있는 불을 끄듯이 해야 한다.

 

經에 云

 

“無常之火가 燒諸世間이라” 하시며 又曰

“衆生苦火가 四面俱焚이라” 하시고 又云

“諸煩惱賊이 常伺殺人이라” 하시니

道人은 宜自警悟하여 如救頭燃하라 하시니라.

 

 

 

몸에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있고,

세계에는 이루어지고 지속되고 허물어지고

없어져버리는 것이 있으며,

마음에는 일어나고 머무르고 변해가고

사라져버리는 것이 있다.

 

이것이 (바로) 덧없는 괴로움의 불이 사방에서

함께 타고 있다는 것이다.

현묘한 이치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身有生老病死하고 界有成住壞空하고

心有生住異滅하니,

此無常苦火가 四面俱焚者也라. 謹白參玄人하노니

光陰莫虛度하라.

 

 

 

세상의 뜬 이름을 탐하는 것은

부질없이 몸만 괴롭게 하는 것이고,

세상의 이익을 좇아 허둥대는 것은

업(業)의 불길에 땔감을 더하는 꼴이다.

 

貪世浮名은 枉功勞形이요, 營求世利는 業火加薪이로다.

 

 

세상의 명예와 이익은 불붙을 섶이니,

≪법화경≫에

“하찮은 형체, 소리, 냄새, 맛은

욕심의 불길을 일으키는 도구이니

탐하지 마라”고 하신 것이 이 뜻이다.

 

世間 名利 法華

麤蔽 色聲香味 致火之具 貪

 

 

 

경전에,

“어찌하여 도적이 내 옷을 빌려 입고 여래를 팔아

갖가지 업(業)을 짓는가”라고 하였다.

 

經에 云

“云何賊人이 假我衣服하여 裨販如來하며

造種種業이어뇨” 하시다.

 

 

 

말법의 비구에게 여러 가지 이름이 있으니, 혹

‘박쥐중[鳥鼠僧]’이라 하며, 혹

‘벙어리염소중[啞羊僧]’이라 하며, 혹

‘까까머리거사[禿居士]’라고도 하며, 혹

‘지옥 찌꺼기[地獄滓]’라고도 하며, 혹

‘가사 입은 도적[被袈裟賊]’이라고도 하니,

이 때문에 슬프다.

 

末法에 比丘가 有多般名字하니, 或鳥鼠僧이라 하며

或啞羊僧이라 하며 或禿居士라 하며 或地獄滓라 하며

或被袈裟賊이라 하시니, 噫라 其所以以此일새니라.

 

 

그러므로

“털을 뒤집어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가?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시주한 것을 (공부도 하지 않고)

거저 받아먹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은데도 먹고,

춥지 않은데도 입으니,

이것은 진실로 어떤 마음인가?

모두 눈앞의 즐거움이

곧 후생의 괴로움이 됨을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구나”라고 하였다.

 

故로 曰 “要識披毛戴角底麽아 卽今에

虛受信施者가 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오?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대지도론(大智度論)≫에,

“한 수도인이 다섯 낟알 좁쌀(곡식) 때문에 소의 몸을 받아,

살아서는 힘껏 일을 해서 갚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고기)로 갚았다”고 한다.

함부로 받은 시주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에 受牛身하여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 하니 虛受信施가

報如影響이니라.

 

 

그러므로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는 독약을 먹듯이 하고,

보시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듯이 하라.

후한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이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故로 曰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며 受施를 如受箭이어다.

幣厚言甘이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 선가귀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