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무위 때문에 편안하다.
至 樂
천하에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가, 없는가?
몸을 살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가, 없는가?
지금
무엇을 하고,
무엇에 의지하며,
무엇을 피하고,
무엇에 편안하며,
무엇을 따르고,
무엇을 버리며,
무엇을 즐기고
무엇을 미워할 것인가?
대체로 천하가 존중하는 것은
부(富)함과
귀(貴)함,
장수(長壽)와
명예(名譽)이다.
또 즐거워하는 것은
몸의 안락, 맛 좋은 음식, 멋있는 옷, 아름다운 여자, 좋은 음악이다.
그러나 싫어하는 것은
가난과 천함과 요절(夭折)과 악명이다.
그리고 괴로와하는 것은
몸이 안일하지 못한 것과
입에 맛진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과
몸에 좋은 옷을 입지 못하는 것과
눈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보지 못하는 것과
귀로 좋은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혹 이것들을 얻지 못하면
크게 근심하고 두려워하니,
그 몸뚱이를 위함이 또한 어리석도다.
대체로 부자는
자신을 괴롭혀 애써 일하여 재산을 많이 쌓아두고도 다 쓰지를 못한다.
이것은 재물이라는
외물(外物) 때문에 허덕이는 것으로
지극한 즐거움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것이다.
또 귀한 사람은
밤을 낮에다 이어 직무를 위하여
잘잘못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으니,
이것도 자기 지위라는 외물 때문에 허덕이는 것이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근심과 더불어 태어난다.
그래서 장수하는 자는 멍하니 오래도록 걱정을 하면서도
죽지 않으니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이것도 장수라는 외물때문에 허덕이는 것이니
지극한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열사(烈士)는 세상에서 칭찬을 받으나
그의 몸을 살릴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착함인지, 착함이 아닌지를 진실로 모르겠다.
만약에 착함이 된다면
자신을 살릴 수가 없고,
착함이 아니라면 남을 살릴 수가 있다.
그러므로
「충성되게 간해도 들어주지 않거든 순종하고 다투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런고로 저 자서(子胥)는
다투다가 그 몸을 죽였다.
만약 다투지 않았더라면
명예는 이루어 지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로 착함이 있는가 없는가?
「지극한 즐거움은
세속의 즐거움을 초월하는 것이요,
지극한 명예는
세속의 명예를 초월하는 것이다」
라고 한다.
천하의 시비는 과연 결정할 수가 없는 것이나,
무위(無爲)로써 가름하면
시비를 결정할 수가 있다.
지극한 즐거움과 몸을 살리는 방법은,
오직 무위로써만이
그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시험삼아 말해보리라.
하늘은 무위 때문에 맑고,
땅은 무위 때문에 편안하다.
그러므로 이 두 무위가 서로 합하여
만물이 모두 생성 변화하는 것이다.
이런 창조 근원은 아득하여
그 생겨나는 바를 모르고,
까마득하여 그 모양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만물은 무진장으로
이 무위 때문애 번식한다.
그러므로
「천지는 작위(作爲)함이 없지만 만들어내지 않음이 없다」
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속인중에 누가
이 무위의 경지에 들어갈 수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