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청정한 성품

竹隱죽은 2019. 10. 24. 05:14

 


과거의 ‘나’가 죽고

미래의 ‘나’가 죽어야

현존한다.

 

현존하는 삶에는

불안도 없고

갈등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과거와 미래가 죽고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지금 이거’에 내맡기는 것,

 

 

이것이 현존이다.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버리고

이 생각도 버리고 저 생각도 버리고

이 세상도 버리고 저 세상도 버리면

 

‘지금 이 순간’만 남는다.

 

지금 이 순간에는 시간이 없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한 지금 이 순간이다.

 

따라서 하루하루가

1년이고

10년이고

100년이다

 

 

지금 이 순간 밖에서 숨 쉴 수 없고,

지금 이 순간 밖에서 하늘을 볼 수도 없고

 

시냇물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꽃향기를 맡을 수도 없고

음식을 맛볼 수도 없고,

 

지금 이 순간

밖에서 추위를 느낄 수도 없으니,

 

지금 이 순간을 떠난 건

모두 허상이고 망상이고 허구다.

 

 

중생이

회한과 불안에 시달리는 것은

‘지금 여기’를 떠나

 

과거의 영상을 떠올려

거기에 얽매이고,

미래의 일을 상상하여

거기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회한도 불안도 없는 곳은

‘지금 여기’뿐이다.

 

 

지금 여기가 곧 ‘피안’이다.

 

‘지금 이것’에 집중하고,

마음이

과거나 미래로 가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

 

이것이 수행의 첫걸음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영상은

과거와 미래로 떠돌아다니는

상상이고 허상이다.

 

 

‘지금 이 순간’만이 청정한 성품이다.

 

저녁에 잠들면 모든 게 소멸하고,

아침에 눈 뜨면 다시 새로운 세상이니,

하루하루가 처음이고 시작이다.

 

과거가 없고

미래가 없으면

 

지금의 온갖 것이

다 새롭다.

 

마음이 ‘지금 이 순간’에서

달아난 것을 알아차린 자,

 

 

그는 현존하기 시작한다.

 

 

과거와 미래는 환상이고,

‘지금 이 순간순간’만이

최선이고

인연의 끝자락이고

완결판이다.

 

과거와 미래가 끊어지고

지금 보이고 들리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

이것이 일상 속의 수행이다.

 

지금 보이고 들리는 것에만

관심 있는 ‘단순한 인간’,

 

그는

회한도 없고

망상도 없어

편하게 살고 편하게 죽는다.

 

- 인생과 싸우지 않는 지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