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일이 없는 사람

竹隱죽은 2019. 10. 17. 05:30

 

일 없는 사람이 귀인이다

 

임제선사께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참으로 중요한 것은

참되고 바른 견해를 구해서

 

眞正見解

 

천하를 마음대로 다니면서

도깨비 귀신에게 홀리지 않는 것이다.

 

 

일이 없는 사람이

참으로 귀한 사람이다.

 

 

다만 억지로 조작하지 말라.

오직 평상의 생활 그대로 하라.

그대들이 밖을 향하고 옆집을 찾아 헤매면서

방법[脚手]을 찾아봐야 그르칠 뿐이다.

 

단지 부처를 구하려 하나

부처란 이름이며 글귀일 뿐이다.

 

그대들은 바깥을 향해서

허둥대고 찾으려 하는 그 사람을 아는가?

 

시방 삼세의 부처님과 조사님들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오로지 법을 구하기 위함이다.

 

지금 여기에 참여하여

도를 배우는 사람들도 또한

다만 법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법을 얻어야 끝낼 수 있다.

법을 얻지 못하면

여전히

지옥·아귀·축생·천도·아수라[또는 인도]의

다섯 갈래의 길에 떨어져 윤회하게 된다.

 

무엇이 법인가?

법이란 마음의 법이다.

 

 

 

마음의 법은

형상이 없어서

온 시방법계를 관통하고 있어서

눈앞에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을 철저하게 믿지 못하고서

다만 명칭을 오인하고 글귀를 오인해서

문자 속에서 구하고 있다.

 

불법을

생각으로 헤아려 이해하려고 하니

하늘과 땅의 차이로 멀리 달라져 버렸다.”

 

師示衆云

 

道流

 

切要求取

眞正見解

 

向天下橫行 免被這一般精魅惑亂 無事是貴人 但莫造作 祇是平常 你擬向外 傍家求過 覓脚手 錯了也 祇擬求佛 佛是名句 你還識馳求底麽 三世十方佛祖出來 也祇爲求法 如今參學道流 也祇爲求法 得法始了 未得 依前輪廻五道 云何是法 法者

 

是心法

心法 無形

通貫十方

目前現用

 

人信不及 便乃認名認句 向文字中求

意度佛法 天地縣殊

 

 

 

 

강설(講說)

 

 

‘도깨비 귀신에게 홀린다’는 것은

 

자기를 망각하고

온갖 잡다한 고정관념과

지식과 알음알이,

제도 등에 휘둘려서

바른 소견 없이

이리 저리 흔들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참되고 바른 견해를 취해서

이러한 귀신이나 도깨비의 놀이에

홀리지 않는 것이 수행입니다.

 

임제선사께서는

‘일이 없는 사람이 참으로 귀한 사람이다.’

라고 했는데,

 

왜 일이 없는 사람일까요?

 

심법(心法)은

본래부터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바깥으로 기웃거리며

찾을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부이든 수행자이든

밖으로 무언가를 찾고 구하는 것이

중생의 오래된 습관이어서

일 없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고 한 것입니다.

 

‘법이란 마음의 법이다.’ 라고 하는 것은

법(法: 진리 또는 일체경계)이란

심법(心法: 마음법) 밖에 다른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원효스님의 오도송에도

“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법이 일어나고

 

心生卽 種種法生

 

마음이 사라지면 온갖 법도 멸하는 것

 

心滅卽 種種法滅,

 

삼계가 모두 마음이요

만법이 오직 인식이라

 

三界唯心 萬法唯識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으니

어찌 따로 진리를 구할 것인가"

라는 게송이 있습니다.

 

心外無法 胡用別求

 

성철스님은

돈오돈수(頓悟頓修)를 말씀하셨는데,

 

수행을 하되

수행한다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행한다는 생각이 있다면

아직 일이 있는 것입니다.

 

보조스님은 비록 돈오를 했다 하더라도

무시(無始)이래로 익혀온 습을

녹여야 하므로

끊임없이 닦아야 한다는 점에서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말씀하셨습니다.

 

‘무사(無事)’라고 하는 것은

닦는다는 생각도,

대상도 다 끊어진 공(空)이자

반야(般若)차원의 표현인 것입니다.

 

- 임제록 강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