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해지기만 하면
무심하다면
허망은 무엇을 의지해 일어나는가
물 음
본래부터 무심하다면
허망함은 무엇을 의지해 일어나는가?
답 함
본래부터 무심한 줄
깨닫지 못한 것을 허망이라 한다.
만약 본래부터 무심한 줄 알면
허망함이 일어날 곳도 없고
진실을 얻을 곳도 없다.
물 음
무엇 때문에 마음이 있으면 허망하고
마음이 없으면 허망하지 않는가?
답 함
법계의 성품이 공적해
주재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있으면 주재자가 있고
주재자가 있으면 분제(分劑, 영역)가 있다.
그러나
마음이 없으면 주재자가 없고,
주재자가 없으면 분제가 없으며,
분제가 없으면 생사가 없다.
물 음
무심하다는 것은
마음을 벗어난 것이 무심한 것인가,
아니면 마음 자체가 무심한 것인가?
답 함
마음 자체가 무심한 것이다.
물 음
마음 자체라면 마음이 있다는 것인데
어떻게 무심할 수 있는가?
답 함
심상心相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분별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 음
그렇다면
어찌 분별해서 아는 것이 아니겠는가?
답 함
분별해 알면서도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무심이다.
어찌 전혀 작용이 없어야만
비로소 무심이겠는가.
비유하면
밝은 거울이 물건을 비추는 것과 같으니
어찌 마음이 있겠는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중생이 항상 스스로 무심하여
심체心體가 본래 항상 고요하니,
고요하면서도 항상 작용하고
작용하면서도 항상 고요하다.
경계에 따라 비추어 분별하는 것은
모두 실제의 성품이 본래 그러한 것이니,
마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중생들이
자신의 마음이 항상 고요함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있다고
허망하게 계탁計度하기 때문에
마음이 곧 경계를 이룬 것이다.
마음 자체에
마음이라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이치이고,
이치 자체에 이치라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치가 항상 마음이다.
이치가 항상 마음이기 때문에
심상心相을 움직이지 않고,
마음이 항상 이치이기 때문에
심상을 얻을 수 없다.
심상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중생이 생기지 않고,
심상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부처도 생기지 않는다.
중생과 부처가 모두 생기지 않기 때문에
범부와 성인 그대로가
항상 법계의 성품과 평등하니,
순전히 하나의 도가 청정할 뿐,
다시 다른 법은 없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마음으로 분별하여
이해하는 것이 있기만 하면
이는 모두 허망한 것으로서
꿈속의 일과 같으며,
만일 완전히 깨치지 못했다면
보고 있는 털끝만한 것까지도
꿈속의 일과 같다.
그러나 무심해지기만 하면
깨달음은 후에 모든 경계를 끊는 것과 같아지리니,
그저 한 터럭만큼이라도
증득할 수 있는 불가사의한 해탈처가 있다면
모두 3계三界의 꿈속에서
보는 경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경(經)』에서
“얻을 만한 작은 법조차 없어야
부처님이 수기하신다.”고 하였다.
명추회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