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禪門

평상平常한 마음

竹隱죽은 2019. 9. 9. 10:14

 

학 인

 

참마음과 허망한 마음이

경계를 대할 때,

어떻게 참과 거짓을 분별합니까?

 

 

보 조

 

허망한 마음으로

경계를 대하는 것은 알음알이知가 있어 아는지라

 

거슬리고 순하는 역순逆順 경계에

탐욕·성냄 등의 마음을 일으키고

 

또 그 중간인 경계에 대해서는

치심痴心을 일으키나니

 

이미 경계에 임하여

탐욕·성냄·어리석음 등

삼독을 일으킨다면

족히 그가 허망한 마음임을 알 수 있느니라.

 

 

 

조사께서 말씀 하시기를,

“거슬림과 순함이 서로 다투는 것이

마음의 병이 된다”

하시니,

 

그러므로

옳음과 옳지 못함을 상대하는 것이

허망한 마음임을 알 수 있느니라.

 

만일

참마음이라면 알음알이가 없이 아는지라

 

평탄한 생각으로 두루 비추는 까닭에

초목과는 다르고,

미움도 사랑도 없는 까닭에

허망한 마음과도 다르나니,

 

곧 경계를 대하여

비고 밝아 미워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으리니,

 

알음알이가 없이 아는 것이

참마음이니라.

 

 

 

조론肇論에 말하기를,

“성스러운 마음이란 미묘해서

형상이 없는지라 있다고 할 수 없고,

쓸수록 더욱 부지런한지라

없다고 할 수도 없도다” 하고,

 

나아가서는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알되 아는 것이 없고,

 

없는 것이 아니므로 알음알이가 없되 안다” 하시니,

 

그러므로 알음알이가 없되 아는지라

성인의 마음과 다르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또 허망한 마음은

있음에서는 있음에 집착하고

없음에서는 없음에 집착하여

항상 두 쪽에 치우치기 때문에

중도中道를 알지 못하나니,

 

 

영가가 말하기를,

“허망한 마음을 버리고 참마음을 취하면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교묘한 거짓을 이룬다.

 

학인은

수행하는 법을 몰라서 도적을 잘못 알아

자식으로 여기는 병이 깊었도다” 하니,

 

 

 

진실로 참마음이라면

있음과 없음에 처하되

있음과 없음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중도에 처하느니라.

 

 

 

그러므로

“있음의 반연을 쫓지도 말고,

공이라는 지혜에도 머물지 말라.

한 가지 생각이 평탄하면

빈듯이泯然 저절로 다하리라” 하시며,

 

 

“그러므로

성인은 있음에 처하되 있음이 아니요,

없음에 있으되 없음이 아니다.

 

 

비록 있음과 없음을 취하지 않으나

있음과 없음을 버리지도 않도다.

 

그러므로 햇빛과 먼지가 섞이듯이

다섯 갈림五趣에 두루하되

고요히 가고 갑자기 돌아와

편안한 듯 담담한 듯 함이 없되

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시니,

 

이는 성인께서 중생들을 위하여

다섯 갈래에 두루하면서

중생들을 건져 교화하시기 위하여

 

비록 왕래하지만 왕래함이 없는 것이니라.

 

허망한 마음은

그렇지 않아서 참과 허망함이 같지 않으니라.

 

 

 

또 참마음은 곧 평상平常한 마음이요,

허망한 마음은 곧 평상치 못한 마음이니라.

 

 

 

학 인

 

평상의 마음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보 조

 

사람마다 제각기

한 점의 신령스런 광명이 있되

맑기가 허공과 같아서 모든 곳에 두루 했나니,

 

세속 일俗事을 대하여는

거짓으로 이성理性이라 하고,

 

정신의 움직임行識에 대하여

방편으로 참마음이라 부르느니라.

 

털끝만큼의 분별도 없으되

인연을 만나면 어둡지 않고,

 

한 생각도 취하고 버릴 것이 없으되

만나는 물건마다 두루하는 지라

만 가지 경계를 따라 변화하지 않는다.

 

설사 흐름을 따라 묘함을 얻을지라도

제자리를 여의지 않고

항상 담연湛然하니

 

찾으면 그대가 곧 볼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니,

이것이 참마음이니라.

 

 

 

 

학 인

 

어떤 것이

‘평상치 못한 마음’不平常心 인가요?

 

 

 

보 조

 

경계에는

 

성인과 범부,

물들음과 깨끗함,

없어짐과 항상함,

이론과 현실,

일어남과 사라짐,

움직임과 고요함,

감과 옴,

예뻐함과 미워함,

선과 악,

인因과 과果 등이 있나니,

 

자세히 논한다면

천만 가지 차별이 있거니와

모두가 평상치 못한 경계니라.

 

마음은

이 평상이 아닌 경계를 따라 생기고

이 평상이 아닌 경계를 따라 사라지나니,

 

평상이 아닌 경계의 마음이란

전의 평상平常한 참마음에다 견주므로

평상치 못한 허망한 마음이라 하느니라.

 

참마음은

본래부터 완전具하여

평상치 못한 경계에 대해

갖가지 차별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평상한 참마음이라 하느니라.

 

 

 

 

학 인

 

참마음이 평상하여

모든 차별된 인因이 없다면

어찌하여 부처님은

인과因果와 선악善惡과

그 응보應報를 말씀하셨는가요?

 

 

 

보 조

 

허망한 마음이

가지가지 경계를 따르되

가지가지 경계를 알지 못하여

가지가지 마음을 일으키므로

 

부처님께서

가지가지로 인과법을 말씀 하셔서

가지가지 허망한 마음을 조복시키려고

인과의 법을 세우셨거니와,

 

참마음은

가지가지 경계를 따르지 않으며

가지가지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부처님께서

가지가지 법을 말씀하시지 않았거늘

어찌 인과가 있으리요?

 

 

 

 

학 인

 

참마음은 항상 나지 않는 것인가요?

 

 

 

보 조

 

참마음은

때때로 베풀고 작용하지만

경계를 따라 생기는 것이 아니나

 

다만

묘한 작용으로

마음대로 노닐므로遊戱

인과에 어두워지지昧 않느니라.

 

 

선문촬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