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如如
“여여如如란 어떤 것입니까?”
“여여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니
마음이 진여인 까닭에 여여라고 하느니라.
과거 모든 부처님들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성도하셨고,
현재의 부처님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성도하시고,
미래의 부처님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또한 성도하실 것이니,
삼세에 닦아 증한 바의 도가 다름이 없으므로
여여라 함을 알지니라.
『유마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들도 또한 같으며
미륵에 이르러도 또한 같으며
내지 일체 중생에 이르러도 모두 같다.
왜냐하면 불성이란
끊어지지 않고 있는 성품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느니라.”
問 如如者는 云何오
答 如如는 是不動義니 心眞如故名如如也니라.
是知過去諸佛도 行此行하야 亦得成道며
現在佛도 行此行하야 亦得成道며 未來佛도
行此行하야 亦得成道니 三世所修證道도
無異故로 名如如也니라 維摩經云 諸佛도
亦如也며 至於彌勒도 亦如也며 乃至一切衆生도
悉皆如也니 何以故오 爲佛性이 不斷有性故也니라.
여여란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이 없어진
그것을 여여如如라 하니
여여란 진여眞如입니다.
‘움직이지 않는다不動’는 것은
절대로 변동이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니
설사 자성 가운데
항사묘용이 원만구족하여
천차만별의 모든 분별을 내며
천번 만번 움직이는 대활동을 한다
하여도
실제로는 자성에 아무런 동요가 없습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변천이 있고
동요가 있으면
참으로 대법을 깨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바윗덩어리나 쇳덩이같이
꼼짝 않고 죽은 것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무한한 활동을 하지만
아무리 활동하여도
생멸이 아닌 진여묘용이기 때문에
움직이는 가운데 움직이지 않음이 있고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움직임이 있어서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이
서로 둘이 아니고 무애자재합니다.
왜냐하면 자성이란 진여이므로
일체 명상이 다 끊어진 동시에
일체 만법이 원만구족해서
무애자재하므로 여여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님들도
모두 이 마음이 진여인 행을 행해서
성도하는 것이니
이것을 여여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유마경』에
모든 부처님의 자성이나
미륵보살의 자성이나
중생의 자성이 조금도 차이가 없어
그 진여자성은 불생불멸이며,
모든 부처님에 있어서도 증감이 없고
중생에 있어서도 증감이 없는
여여如如한 그대로여서
무애자재한 진여묘용은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불성이란 끊어지지 않고 있는 성품이기
때문인 것이니
‘끊어지지 않고 있는 성품’이란
삼세를 통하여 변하고 바뀜이 없는 것이니
상주법계常住法界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있는 성품有性’이란
생멸인 유무有無의 있음有이 아니고
중도의 있음有,
곧
제법실상諸法實相을 말하는 것입니다.
변견에 떨어진 상대 대립으로써의
유무有無의 있음有이 아니며
단멸의 있음有이 아닙니다.
불성佛性이란
있음有도 아니고
없음無도 아닌 동시에,
또한 있음有이며
또한 없음無이어서
있음有과 없음無이 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있는 성품有性’이란
또한 있고 또한 없음亦有亦無의
있는 성품이지
절대로 생멸적인 유무의 있는 성품有性이 아니며,
있음有과 없음無이
서로 원융무애한 있음有인 것입니다.
그래서
무애진여를
불성이라 하는 것이니
이것을 여여라 하기도 하고
부처라 하기도 하고
열반이라 하기도 하고
도(道)라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이 없어졌다’는 것이
곧 진여인 것이니,
진여는 여여해서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가 이것을 깨치고
이것을 성취하였지
이것 내놓고
절대로 다른 것은 없으므로
여여라고 표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 돈오입도요문론 강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