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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禪門

진정한 본성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발견하게 되면

문제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문제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이는 그 당사자도 사라집니다.

이것은 진리탐구에서 매우 중요한 요점입니다.

 

   
자신을 개인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다면

 

이런 식의 바라봄은 그저 여러분을 짜증나게 만들 것입니다. 이렇게 항의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지요.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죠? 지금 제 문제를 아예 다루려 하지도 않고 있잖아요!” 네, 저는 여러분의 문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 문제는 물론이고 여러분 자신조차 실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개인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순수한 인식이며 순수한 의식입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도 말이지요.

   
좋은 소식은,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기 위해서

‘개인’이 경험하는 모든 외견상의 문제나 장애를

제거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하나의 장애물을 제거한다고 해도,

또 다른 장애물이 금세 나타날 테니까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내 존재를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가 경험하는 삶이 안정되어야만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오해에 여전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성에 대한 확신에서 벗어날 때라야

― 이 일은 한순간에 일어날 수 있지요 ―

비로소 우리는 더 높은 곳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의식의 자리에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그저 개인일 뿐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우리가 사실로 오해할 때만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요.

  


의식이 일단 개인-정체성과 사랑에 빠지고 나면,

그 정체성을 더 이상 못 참게 되었을 때만

그것을 포기할 것입니다.

 

 

의식이 개인성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개인적 삶과 관련된 일들을 다루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쓰여서 다른 데에 쓸 에너지는

거의 남지 않게 되지요.

 

한동안 이 개인화된 의식은

다른 뭔가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나와 나의 삶, 내 가족과 친구가 전부인걸.”

이렇게 말이에요.

 

 

하지만

개인화된 의식의 테두리는

제한적이고 매우 갑갑합니다.

그러므로 언젠가 우리는 지켜봄과

현존의 더 넓은 영역으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역동적인 삶 속의 문제들을 무시해야 한다거나 그런 문제들을 풀려는 노력이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아요. 실제로도, 문제처럼 보이는 것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한,

 

그 문제들이

힘을 어디에서 얻고 있는지 살펴보고,

또 우리 자신의 참된 자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그 문제들을 탐구해볼 수 있지요.

 

 

우리의 참된 자리가 명확해짐에 따라

문제들은 자연스레 사라질 것입니다.

 

 

   - 드높은 하늘처럼, 무한한 공간처럼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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