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색한 부처님 제자 입으로는 가난타 말하나
실로 몸은 가난해도 도는 가난치 않음이라.
窮釋子口稱貧
궁석자구칭빈
實是身貧道不貧
실시신빈도불빈
‘궁색한 부처님 제자’라 하니
무엇이 궁색하다는 말인가?
돈이 없고 옷이 없고 쌀이 없고
또 무슨 물건이 없다는 말인가?
예전 스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도를 배우려면 마땅히 가난함부터
먼저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學道先須學貧
중생이란
그 살림이 부자입니다.
8만4천 석이나 되는 온갖 번뇌가
창고마다 가득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고마다 가득 찬 번뇌를
다 쓰지 못하고 영원토록 생사윤회를 하며
해탈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참답게 도를 배우려면
8만4천 석이나 되는 번뇌의 곳집을
다 비워야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할 때
참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8만4천 석이나 되는 번뇌를
다 버리고 나면
참으로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이 되어서
텅텅 빈 창고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 뜻은 실제로
진공眞空을 먼저 깨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주 가난한 진공眞空,
이것은 가난한 것도 없는 데서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도를 닦음에 있어서는
가난한 것부터 먼저 배우라는 것인데
그것은 번뇌망상을
먼저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생이 망상의 살림살이를 버리면
진여자성(眞如自性)이 진공(眞空)임을
알게 되는데
그것을 아는 사람만이
참으로 가난한 사람입니다.
일체 번뇌망상이 다해서
영원히 가난하면
한 물건도 거기 설 수 없어서
‘몸은 가난하나 도는 가난하지 않게 되는 것’
입니다.
예전 스님들이 가난한 것을 말할 때,
“작년에는 송곳 세울 땅도 없더니
금년에는 송곳마저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去年無錐地 今年錐也無
작년에는 번뇌망상을 버리고 또 버려서
송곳 세울 땅도 없을 만큼
모든 망상이 끊어져 가난해졌지만
끊어졌다는 그 놈,
송곳이라는 물건은
아직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그 송곳마저도 다 버려서
가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상(人相)과 아상(我相)이 끊어지고
모든 상대가 끊어져서
절대인 진여묘용(眞如妙用)이
현발(顯發)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정각(正覺)이라 하고
중도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음속에 있는 번뇌망상만 버리면 그만이지
금은보화는 도 닦는 이가 아무리 많이 가져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하고
혹 이렇게도 생각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도 참 좋은 말이지만
금은보화라는 패물을 지니고 있으면
재물에 대한 욕심이 늘 붙어 있어서
마음속의 탐심을 버릴 수 없게 됩니다.
내 마음속의 탐심을 버리려면
바깥에 있는 물질적인
금은보화 같은 물건까지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당(唐)나라의 방거사(龐居士)는
자기의 그 많은 모든 재산을 배에 싣고 가서
동정호(洞庭湖)에 버리고는
대조리를 만들어서 장에 갖다 팔아
나날의 생계를 이어 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밖으로는
모든 물질까지도 다 버리는 동시에
안으로는
번뇌망상을 다 버리게 되면
안팎이 함께 가난하게 됩니다.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가난뱅이가 된다면
모든 것이 공해서
거기에는 항사묘용이
현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으니,
이것이 곧 견성이며 성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은
안팎으로 가난한 것부터 먼저 배워야 합니다.
성철스님의 신심명 증도가 강설 중에서